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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통했는데 송영길은 실패...셀프출석, 뭐가 달랐길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두 번째 자진 출석했다가 조사를 받는데 실패했다. 지난달 2일에 이어 두 번째 자진 출석이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과거 검찰 수사를 받는 도중 자진출석으로 검찰의 체포동의안을 철회시킨 데 비해 차이점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변호인인 선종문 변호사와 함께 중앙지검 1층 민원실을 찾아 “본인이 아니면 변호사라도 대리 면담을 하게 해달라”고 담당 검사에게 유선으로 요청 했지만 “필요하면 연락을 주겠다”는 대답만 들었다. 검찰은 송 전 대표의 출석에 대해 일관되게 “출석 합의도 없고, 조사계획도 없다”며 난색을 보였다. 송 전 대표는 이날 취재진과 지지자들 앞에서 A4 용지 10장 분량의 ‘검찰 비판문’과 함께 ‘무고한 사람들은 그만 괴롭히고 송영길을 소환해달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지만 결국 조사는 불발됐다.

체포영장 철회시킨 박지원, 출석 시점 짚어낸 이회창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자진 출석해 출입증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김종호 기자.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자진 출석해 출입증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김종호 기자.

 2차에 걸친 ‘셀프 출석’에도 검찰은 미동하지 않는 모습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정해진 일정대로 갈 것”이라며 “현재 진행형인 돈 봉투 수수자 특정,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절차와 더불어 송 전 대표와 관련한 제반 수사도 진행 중이므로 적절한 시점이 되면 어차피 소환 조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전 대표를 돈 봉투 살포 사건의 최종 수혜자로 보고 있는 만큼, 아직 조사할 시기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이날 송 전 대표의 자진 출석에 대해 “수사는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며 “마음이 다급하시더라도 절차에 따라 수사에 잘 응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무위에 그친 송 전 대표의 셀프 출석과 달리 절묘한 시점을 노려 효험을 본 사례도 있다. 2012년 검찰의 저축은행 금품 수수 사건 수사 당시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당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지내고 있던 박 전 원장은 저축은행측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두고 있었다.

 박 전 원장은 검찰 수사에 반발하며 3차례 소환에 불응하다가,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한 당일(7월31일) 기습 출석했다. 검찰은 이튿날 새벽까지 박 전 원장에 대해 조사를 하고 돌려보냈지만, 애초 체포동의안의 명분이 사라지자 어쩔 수 없이 철회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2012년 12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석하며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2012년 12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석하며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중앙포토.

 법조계에서는 자진출석이 효과를 보이기 위해선 출석 명분과 피의자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분석한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소환일정을 사전 조율하지 않은 것은 송 전 대표와 같았지만, 검찰이 내건 명분을 무력화하는 데 집중했다는 점이 다르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출석을 통보할 정도면 수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는 뜻”이라며 “피의자를 조사할 시기가 된 상황에서 검찰에 자진 출석한 것과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조사하라고 출석하는 건 경우가 다르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후 기소됐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도 받아냈다.

 송 전 대표의 경우 기 싸움을 벌이려한다는 점도 차이로 지목되고 있다. 송 전 대표는 이례적으로 두 번에 걸쳐 자진 출석을 하고, 출석시마다 검찰을 비난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지금 송 전 대표를 조사하면 검찰이 기세에서 진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라며 “명분이 검찰에 있는데 굳이 지고 들어가야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수사 흐름을 짚어내는 안목도 필요하다고 한다. 2003년 12월 불법 대선자금 수수 사건 수사 당시 대법관 출신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자신의 최측근이자 선거자금 모금 핵심 관계자인 서정우 변호사가 구속되자, 엿새 후 대검 중앙수사부에 자진 출석했다. 자신이 소환될 차례가 되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검찰의 강제수사 명분 쌓기를 차단한 것이다. 검찰은 이 전 총재에 대해선 입건조차하지 못했다.

 김기윤 변호사(김기윤 법률사무소)는 “송 전 대표가 두 차례나 자진출석한 건 구속영장 청구를 우려해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선제적으로 강조하려는 동시에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려는 정치적 의도”라며 “자신을 먼저 수사해달라는 건, 검찰 소환 순서도 이미 알고 있으니 주변인은 건너뛰라는 메시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송 전 대표의 경우 돈봉투 수수 의원들에 대한 조사를 마친 이후에 소환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송 전 대표에 대해선 지금 조사할 필요성이 없다”며 “돈봉투 전달과정과 사용처 등에 대해 탄탄하게 수사를 한 후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12월15일 불법 대선자금 모금 사건과 관련, 서울 서초구 대검 중수부로 출석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중앙포토.

2003년 12월15일 불법 대선자금 모금 사건과 관련, 서울 서초구 대검 중수부로 출석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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