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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경사노위 참여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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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노총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2016년 1월 박근혜 정부 이후 7년5개월 만이다. 현 정부의 유일한 노동계 대화 파트너마저 이탈하면서 노정(勞政) 갈등도 극단으로 치달을 것으로 우려된다. 다만 완전 탈퇴 여부는 집행부에 위임하기로 결정하면서 대화 재개의 여지는 남겨놨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노총은 7일 오후 전남 광양지역지부에서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모든 경사노위 대화 기구에 전면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탈퇴’ 또는 ‘전면 중단’ 중 하나로 결론 날 것으로 예상됐는데, 그나마 수위가 낮은 ‘전면 중단’으로 확정됐다.

이지현 대변인은 “향후 윤석열 정권 심판 투쟁에 전 조직이 힘을 모아 나서고, 한국노총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경사노위 참여는 전면 중단할 것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탈퇴 시기와 방법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등 집행부에 위임하는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단서를 달았다. 한국노총은 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논의 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보이콧은 지난달 31일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이 경찰봉에 맞아 다치고 연행된 것이 발단이 됐다. 그는 고공농성을 벌이다가 경찰을 쇠파이프로 다치게 한 혐의로 지난 2일 구속됐다. 진압을 막으려다 함께 연행된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경찰의 폭력 진압 대상은 김만재 위원장과 김준영 사무처장만이 아니라 한국노총 150만 조합원, 2500만 노동자의 삶”이라며 “이런 폭력 사태는 윤석열 정권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고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2016년 1월 박근혜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를 가능하게 하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지침을 추진하자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에 불참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인 2017년 10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노동계 인사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 회동을 진행한 이후 경사노위에 복귀했다.

금속노련 간부 연행이 발단…완전 탈퇴는 유보, 대화여지 남겨

민주노총은 1999년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를 탈퇴한 뒤 25년째 사회적 대화에 불참하고 있다. 줄곧 사회적 대화를 거부해 온 민주노총과 달리 정부의 대화 파트너 역할을 해 온 한국노총마저 이탈하면서 정부도 코너에 몰리게 됐다. 근로시간제 개편 등 산적한 노동개혁 과제를 노동계 협조 없이 일방적으로 풀어나가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을 포용하려던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의 행보 역시 불투명해졌다.

경사노위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한국노총의 결정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며 “한국노총의 입장은 존중하지만, 산적한 노동개혁 과제 해결을 위해 대화에 다시 나서 주길 희망한다. 이른 시일 내에 노사정 대화가 새롭게 시작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한국노총이 향후 정부 행보에 따른 대화 여지를 열어놨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열린 회의에서도 완전 탈퇴를 주장하는 강경 의견과 함께 정부의 반노동 정책을 규탄하더라도 경사노위 탈퇴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원한 노동계 관계자는 “한국노총이 기본적으로 ‘사회적 대화’라는 기조는 버리지 않겠지만, 김 사무처장 구속과 관련된 항의 혹은 경고의 표시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제 공을 넘겨받은 정부의 행보에 따라 완전 탈퇴가 될 수도, 대화 복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도 “정부도 강경 기조만 내세워선 안 되고,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노동개혁을 위해서라도 한국노총과 대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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