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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 고충과 애환 담았다”... 3년 만에 신곡 발표한 크라잉넛

중앙일보

입력

3년 만의 신곡 '야근'으로 돌아온 록밴드 크라잉넛(왼쪽부터 이상면·김인수·박윤식·한경록·이상혁)을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3년 만의 신곡 '야근'으로 돌아온 록밴드 크라잉넛(왼쪽부터 이상면·김인수·박윤식·한경록·이상혁)을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록밴드 멤버들이 신입사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퀵서비스맨 등으로 변했다. 상사에게 혼나고, 교대 근무자는 안 오고, 배달 간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있는 등 직종별로 겪을 법한 고충을 익살스럽게 담았다.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의 신곡 ‘야근’의 뮤직비디오에서다. 2020년 데뷔 25주년 베스트앨범을 발매한 후, 3년 만의 신곡이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크라잉넛의 다섯 멤버(박윤식·이상면·한경록·이상혁·김인수)는 “‘야근’은 쉬운 노래”라고 입을 모았다. 야근하는 신세에 대한 푸념은 후렴구 ‘라라랄라라’로 이어지는 단순하면서도 신나는 멜로디에 금세 가려진다.
박윤식(보컬)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다 보면 ‘야근인데, (크라잉넛) 노래 들으면서 일해요’라는 댓글이 심심찮게 보이더라”며 “잠깐이라도 노래를 들으면서 피로를 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한경록(베이스)은 “직장인이든 프리랜서든, 일을 하든 개인 SNS를 하든 요즘 너무 과열된 것 같다”며 “우리부터 힘을 빼고 가볍게 곡에 접근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5일 발표한 크라잉넛의 신곡 ‘야근’ 앨범 커버. 사진 드럭레코드

지난 5일 발표한 크라잉넛의 신곡 ‘야근’ 앨범 커버. 사진 드럭레코드

3년 만의 신곡 발표…“참신한 후배들 보고 배워”

28년 차 록밴드에게 ‘힘을 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상면(기타)은 “너무 집착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답했다.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니 노래 소재나 가사가 갑자기 턱 막힐 때가 있더라”며 “계속 생각을 하니 집착이 되고 나아가 한계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서, 마음을 좀 비우려 했다”고 신곡 발표에 3년이나 걸린 배경을 설명했다.

무대 위에서 공연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경록은 “열정은 100~120%여도, 너무 잘하려고 하면 오히려 (마음만) 힘들어진다”면서 “80%만 보여줘도 된다, 너무 집착하진 말자는 다짐을 갖고 임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이들이 30년 가까이 꾸준히 음악을 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재밌어서 시작한 음악인데 지금도 여전히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면서 “차트 1위 욕심보다 이러한 재미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게임처럼 즐겁고, 그래서 더더욱 멈추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1993년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모여 밴드를 결성한 크라잉넛 멤버들은 어느덧 40대가 됐다. 1999년 아코디언을 담당하는 김인수를 영입한 것을 제외하고 단 한 명의 멤버 교체 없이 활동을 이어왔다. 이상혁(드럼)은 “리더가 끌고 가는 밴드는 리더만 그대로 있고 멤버들은 계속해서 바뀌더라”면서 “우리는 (리더보다는) 각자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서로 알고, 그것을 합쳐서 결과물을 만든다”고 말했다.
김인수(아코디언·키보드) 역시 “평소 병이 없는 사람이 돌연사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 우리 팀은 (리더 없이) 매번 잔병치레하니 꾸준히 한 팀으로 활동하는 것 같다”고 거들었다.

크라잉넛은 이달 말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춘천 등을 찾아가는 전국투어를 진행한다. 오는 7월에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K-인디 뮤직 나이트’ 무대에 오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크라잉넛은 이달 말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춘천 등을 찾아가는 전국투어를 진행한다. 오는 7월에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K-인디 뮤직 나이트’ 무대에 오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98년 1집 '말달리자'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크라잉넛은 이후 '서커스 매직 유랑단'(1999), '밤이 깊었네'(2001), '룩셈부르크'(2006), '좋지 아니한가'(2007) 등의 노래로 사랑 받았다. 30년 가까이 한결같은 음악을 해온 이들의 이름 앞엔 이제 '1세대' '원조'와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이상면은 “과거 선배들이 초창기 때 크라잉넛을 보며 ‘이 펑크 도대체 뭐야?’ 했었는데, 이제는 저희가 후배들의 참신한 음악 작업을 보며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데뷔했던 90년대와 지금은 음악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그는 “저희는 전체적으로 연주를 깔끔하게 하는 것에 신경 쓰는데 요즘 친구들은 훅(hook·중독성 있는 짧은 후렴구)에 몰입하는 등 가장 중요한 부분을 심도 있게 작업하더라”면서 “작업 방식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작업 속도 등의 부분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후배 가수들과의 음악 작업이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래퍼 비아이(B.I)의 정규 2집 수록곡 '개가트닌생'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한경록은 “(20대인) 비아이는 저희와 세대 차이가 있는데, 어렸을 때 크라잉넛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아이돌 출신에 장르도 힙합 쪽이지만 음악 작업에선 이러한 차이를 넘어설 수 있었다”며 “힙합은 록 같아지고, 록은 힙합적인 요소를 담으면서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걸 느꼈다”고 덧붙였다. 하나의 장르에 갇히기보다 좋아하는 것들을 절묘하고 재치있게 융합해 내는 모습에서 신선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오는 7월, 美 뉴욕 링컨센터 공연…6월 말부터 국내 전국 투어

K-팝의 세계적인 위상과 맞물려 크라잉넛에게도 자신들의 록 음악을 세계에 선보일 여러 기회들이 찾아왔다. 그간 미국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 스웨덴 트라스톡 페스티벌, 싱가포르 모자이크 페스티벌 등 대형 해외 페스티벌에 참여한 데 이어 지난 4월엔 오사카·교토·나고야·도쿄 등 일본 4개 도시에서 투어를 진행했다.

다음달 19일에는 뉴욕 한국문화원의 초청을 받아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K-인디 뮤직 나이트’ 무대에 오른다. 박윤식은 “영미권에서 시작된 록 음악을 한국인이 한국말로 표현했을 때 현지에선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크라잉넛의 28년 역사를 밀도 있게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국내 투어도 진행한다. 23~24일 서울을 시작으로 내달에는 부산과 춘천을 찾는다.

‘다 내려놓고 낄낄대며 음악 하기’(한경록), ‘해외 공연 많이 하기’(이상면), ‘빌보드 차트에 올라 K-밴드 알리기’(박윤식), ‘기존에 하던 것 열심히 하기’(김인수), ‘좋은 노래로 돈 많이 벌기’(이상혁) 등 이루고 싶은 것이 다양한 다섯 멤버는 앞으로 어떤 음악을 만들어 갈까.
한경록은 “굉장히 고민되는 지점이라 팀원들끼리 얘기해봤는데, 굳이 시대와 유행에 맞춰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크라잉넛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을 솔직하게 하는 것이 진심이고, 그 진심은 저절로 대중에 전해진다고 생각한다”고 멤버들은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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