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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달라진 현실 반영 못하는 ‘임원 보수 공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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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

신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

매년 3월 말이면 기업들의 사업보고서 공시 및 주주총회 시즌이 마무리된다. 그 무렵 언론은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기업 오너나 전문경영인, 직원 1인당 연봉이 많은 회사에 관한 화제성 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각 기업 사업보고서의 ‘임원 및 직원 등의 현황’ 및 ‘임원의 보수’ 공시 자료를 이용한 기사들인데, 한국의 경우 자본시장법에 따라 정해진 요건에 해당하는 기업은 이를 제출해야 한다.

사업보고서에 공시되는 임원 보수의 경우 2012년까지는 등기이사 전체에 대한 지급총액,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들에게 지급할 수 있도록 승인된 금액, 1인당 평균급여액만을 공시하도록 했다. 2013년부터는 연봉이 5억원 이상인 등기이사의 경우 연봉을 개별 공시하도록 했다. 2018년부터는 별도로 미등기 임원 전체의 1인당 평균 연봉을 공시하도록 했다. 직원의 경우 1인당 평균연봉이 오래전부터 사업보고서에 공시되고 있다.

현행 공시제도 투명성 높였지만
주식 보상으로 연봉 파악 어려워
진화하는 보상 제도 맞춰 개선을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2013년부터 실시된 현행 임원 보수 공시제도는 임원보상제도의 투명성을 높이고 한국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에도 기여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최근 진화하는 기업의 임직원 보상제도 등으로 인해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구인난이 심화하고 인재 확보 경쟁이 격화하는 시대에 기업이 우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정확하며 비교 가능한 연봉 정보의 공시가 필수적이다. 주주나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들도 기업 경영진과 직원의 보상 경쟁력을 파악하고, 성과급 등 인센티브의 적절성을 평가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비교 가능한 연봉 공시가 중요하다.

그런데도 현행 공시제도에서는 누가 진짜 ‘연봉 킹’인지 파악이 어렵다. 복잡한 주식 기반 보상제도의 등장으로 경영진 및 직원 본인조차 자신의 연봉이 정확히 얼마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기존 제도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과세 대상이 되는 근로소득 기준으로 연봉을 공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주식 보상을 많이 사용하는 경우는 주의가 필요하다. 국내 기업 임직원 성과급이 대부분 단기 현금 보상이지만, 일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장기성과급의 경우 스톡옵션이나 자사주를 이용한 ‘스톡 그랜트’가 활용된다.

스톡 그랜트는 기업 주식을 보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기준시점 주가를 근거로 부여 시점의 가치가 연봉 공시에 포함된다. 반면 스톡옵션은 부여시 공정가치 금액이 연봉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근로소득세 과세 대상인 행사 차익이 발생할 때가 돼야 행사 연도의 공시 연봉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CEO 보상에 주식 보상을 사용하는 모 그룹의 경우, 많은 계열사 CEO들이 과거에 받은 미행사 스톡옵션을 보유하고 있지만 스톡옵션 부여 시에는 연봉 공시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옵션 부여시의 공정가치로 연봉 공시에 반영하는 미국이나 영국 등과 다른 점이다.

최근 한 대기업은 일반직원에게까지 일정 수량의 가상 주식을 부여하고, 3년 동안 주가 상승분을 3년 뒤 현금으로 지급하는 새로운 형태의 장기 성과급을 도입했다. 이렇게 다양하게 진화하는 주식보상제도가 공정가치로 연봉공시에 반영돼야 한다.

둘째, 연봉이 5억원 이상이며 기업에서 가장 급여가 많은 5명에 포함돼 연봉이 공시되는 임원은 당해 연도에 퇴직한 임원인 경우가 많다. 퇴직소득까지 포함해 공시하도록 기업공시 서식 작성 기준에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셋째, 직원 1인당 연봉 공시에는 미등기 임원의 연봉이 포함돼 있다. 예컨대 2022년도 삼성전자의 직원 1인당 평균연봉은 1억3500만원으로 공시됐는데, 이 계산에는 미등기 임원 918명에게 지급된 급여 약 6500억원이 포함됐다. 직원 1인당 순수 연봉만 계산하면 1억30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1인당 직원 연봉 계산 시 직원 수 산정도 어떤 기업은 12개월 동안의 월말 인원수를 산술평균하고, 어떤 기업은 연말 기준 직원 수를 사용해 비교에 문제가 있다.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고 대리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임원이 아닌 일반 직원에게도 다양한 형태의 기업가치 연계 주식 보상을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진화하는 보상 제도에 맞춰 공시 제도가 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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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