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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공분 일으킨 선관위 고위직들 ‘아빠 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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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혜준 사단법인 ‘함께하는 아버지들’ 대표

김혜준 사단법인 ‘함께하는 아버지들’ 대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의 자녀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아빠 찬스’가 또다시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아빠 찬스 논란이 터질 때마다 ‘아빠의 역할과 가치 재발견’이라는 취지로 사단법인 활동을 해온 필자는 누구보다 당혹스럽다.

이렇게 불쾌한 사건에 왜 하필이면 아빠 찬스라는 불편한 용어를 쓰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엄마란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아빠는 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아빠들은 그 존재만으론 부족하고 뭔가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는 무언의 압력을 느낀다. 예를 들면 놀이터에서 아이들끼리 다툼이 생길 때 “우리 아빠는 힘세다!” “우리 아빠가 너 혼내줄 거야!” 같은 말은 그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자기자식만 위하는 가짜 부성애
사회공동체 허무는 편법과 위선
지위고하 불문 공직서 배제해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인지 아닌지는 사회적 역할보다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지가 일차적 요건으로 꼽힌다. 반면 아빠의 역할과 가치는 자녀들과 얼마나 잘 상호작용하느냐에 그치지 않고 집 밖에서 얼마나 강하고 유능한지를 따진다. 사랑의 법칙으로 완성되는 모성과 달리 부성에는 권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세상의 많은 아빠는 가족을 위해 집 밖의 정글에서 하나라도 더 쟁취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더 강하고 더 유능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일까.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라든지 “내가 그 입장이라도 그럴 수 있겠다”라거나 심지어 “누가 그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라는 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이번 선관위 고위 공직자들의 아빠 찬스 논란에서도 그렇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입시 비리 의혹 사건을 두고도 그랬다. 하지만 단언컨대 자기 자식만을 위한 이들의 이기적 일탈 행태는 바람직한 부성애(父性愛)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사이비 가짜 부성애일 뿐이다.

국제분석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이탈리아 정신분석학자 루이지 조야는 수컷에서 아빠로 변화하는 과정은 인간이 야만에서 지성으로 나아가는 관문이라 설명했다. 자기애에 충실했던 한 남자가 새 생명을 자식으로 인정하고 양육 책임을 지기로 결단하는 행동은 다분히 이성적인 각성과 실천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도, 배우 하정우와 하지원이 열연한 한국영화 ‘허삼관’의 원작인 중국 작가 위화(余華)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에서도 인간 지성에 눈 떠가는 남자를 통해 진정한 부성애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이처럼 개인과 공동체를 성숙시키는 인간 지성의 핵심에 자리 잡은 것이 부성애다.

실제로 주변에는 내 자식뿐 아니라 어려운 남의 집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응원하려는 취지에서 꾸린 ‘아빠미소 멘토단’이란 모임도 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생면부지 아이들에게 ‘사회적 아빠’ 노릇을 하면서 진정한 부성애를 실천하는 분들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아빠 찬스라는 말이 개인과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주범이 되면서 부성도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것 같아 한 사람의 아빠로서 화가 난다. 진정한 부성애는 각성·성찰·실천에서 싹튼다. 시민의식과 균형감을 길러주는 공동체의 덕목이기도 하다.

반면 가짜 부성애인 아빠 찬스는 반칙·편법·위선을 통해 자식의 앞길마저 막아버린다. 동시에 대한민국 공동체의 뼈대를 갉아먹는다. 그러니 이런 사이비 부성애를 가진 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직에서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이번에 많은 국민이 아빠 찬스 논란에 분노한 이유가 있다. 문제를 일으킨 이들이 모두 공직자들인 데다 무엇보다 우리 공동체의 핵심인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선거를 주관하는 헌법 기관의 고위직들이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에서도 최고경영자(CEO)의 자녀가 합리적 사유 없이 요직을 꿰차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세상이다. 하물며 공직은 책임감의 차원이 달라야 한다. 공무원 채용 절차가 공정해야 함은 재론할 필요가 없겠다. 아빠 찬스와 사이비 부성애를 뿌리 뽑아 앞으로는 정상적인 아빠들이 억울한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이 없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혜준 사단법인 ‘함께하는 아버지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