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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특구 50년과 한·미동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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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내셔널부장

김방현 내셔널부장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KAL) 여객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미사일에 격추된 사건이 있었다. 이 참사는 KAL기 항법장치에 문제가 있던 게 화근이었다고 한다. 당시 한국은 위성항법장치(GPS) 대신 관성항법장치나 나침반 등을 썼다. GPS는 미국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던 최첨단 기술이었다. GPS기술은 원자시계 등을 장착한 인공위성에 기반을 둔다. GPS의 필수 요소는 정확한 시간, 즉 표준 시간 체계다. 시간이 정확하지 않으면 통신과 교통·물류 등 각 분야에서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 존슨 대통령(아래 사진 오른쪽)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선물한 표준 분동(도량형 표준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전시돼 있다. [사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미국 존슨 대통령(아래 사진 오른쪽)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선물한 표준 분동(도량형 표준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전시돼 있다. [사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은 1970년대 후반까지 GPS는 물론 ‘한국 표준시간’도 없었다. 한국 시간은 1978년 3월 대전에 한국표준연구원(표준연)이 연구시설 등을 갖추면서 보유하게 됐다. 원자시계 등 관련 장비를 도입한 이후다. 그 전까지는 일본 방송국의 시보(時報)를 받아 사용했다.

표준연은 도량형부터 첨단기술까지 표준(Standard)을 정하는 기관이다. 표준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마패와 유척(鍮尺·놋쇠로 만든 자)을 들고 다녔다. 지방 수령이 사용하는 자가 정확한지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암행어사가 표준을 정한 셈이다.

미국 존슨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박정희 대통령.

미국 존슨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박정희 대통령.

표준연은 흥미로운 기록을 갖고 있다. 우선 1978년 대덕연구단지(대덕특구)에 가장 먼저 둥지를 튼 정부 출연기관이다. 현재 대덕특구에는 표준연 등 26개 연구기관이 있다. 표준연은 또 한·미동맹과 관련이 있다. 1966년 방한한 미국 존슨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산업발전을 위해 국가 표준 수립이 중요하다”며 도량형 표준기(표준 분동)를 선물했다. 길이·질량·부피의 척도가 되는 기구다. 이 기구는 표준연 2층에 전시돼 있다. 표준연은 또 미국이 준 500만 달러를 기반으로 설립됐다.

표준연은 고(故) 김재관(1933~ 2017) 박사 등의 노력으로 탄생했다. 표준연 초대 원장을 지낸 그는 1970년대 해외에서 스카우트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김 전 원장은 포항종합제철이 생기고 자동차를 생산해도 국가 표준을 수립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봤다. 이에 표준 연구기관 설립을 정부에 강력히 건의했다. 그는 서독에서 유학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종합제철산업 육성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은 『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홍하상)』이란 책과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표준연을 포함한 대덕특구는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와 함께했다. 대덕특구가 올해 출범 50주년을 맞아 시설을 개방하고 있다. 대덕특구는 1973년 정부가 대덕연구학원도시로 지정한 게 시작이다. 이 참에 대덕특구를 찾으면 산업화 역사를 만날 수 있다. 김재관 전 원장 등 기적을 일군 ‘영웅’ 스토리도 관심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