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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피할 수 없는 맹점을 극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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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인간의 시야에는 맹점(盲點, blind spot)이 있다. 맹점이라 하면 허점이라는 의미로 대개들 이해한다. 사전을 찾아봐도 “주의가 미치지 못하여 모르고 지나친 잘못된 점”이라 정의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은유적 의미이며, 글자 그대로의 맹점은 눈의 한 부분을 지칭하는 해부학적 용어다. 우리가 눈으로 뭔가를 볼 수 있는 것은 안구 뒤편 망막에 깔린 시각세포가 빛을 감지해 그 정보를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하기 때문인데, 망막 한 부분에 시각세포가 없는 곳이 있어 그곳을 맹점이라 한다. 왜 그런 것이 있을까? 시각세포에서 나오는 정보를 전달하는 시신경들은 다발로 묶여 안구에서 뇌로 빠져나가는데, 그 빠져나가는 점에는 시각세포가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점을 향해 빛을 보내는 방향에 있는 물건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부학적으로 필수 조건인 맹점
두 눈이 입체적 시각 만들어 보완
우리 삶에도 존재하는 각종 맹점
시각의 다양화로 극복할 수 있어

그런데 인간의 눈에 맹점이 있는데도 어떻게 해서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까?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우리의 눈이 두 개이기 때문이다. 두 눈의 존재는 기본적으로 입체적 시각을 수월하게 해 주는 기능을 갖고 있는데, 맹점을 극복하는 효과도 있다. 한쪽 눈의 맹점에 다다르는 방향의 물건을 다른 쪽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눈을 감고 보면 맹점이 나타날까? 그렇지도 않다. 한눈을 감고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모든 게 잘 보이지, 안 보이는 지점은 없지 않은가? 놀랍게도, 그것은 우리 뇌에서 시야의 맹점 부분을 잘 땜질하여 매끈한 그림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뇌에서 하는 편집이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에 한 눈으로 보는 시야를 잘 점검해 보면 뭔가 보이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키백과(ko.wikipedia.org)에서 ‘맹점’을 검색해보면 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림과 설명이 있다. 조심스레 지시를 잘 따르면 맹점을 경험할 수 있다.

인류는 자신의 시야에 맹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근대까지 살아왔다. 맹점을 처음 발견한 것은 시각적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해부학을 통해서였다. 프랑스의 과학자 마리오트(Edme Mariotte)는 1660년대에 각종 동물의 눈을 해부하면서, 망막에 시신경이 통과하면서 시각세포가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시야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으리라 추론하고 나서 그다음에 이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는 맹점을 경험하는 실험을 왕실에서 선보였는데, 다들 크게 놀라워했다고 한다. 과학을 사랑한 성직자 마리오트는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하며 프랑스 왕립과학회의 초대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나중에는 기체의 압력과 부피가 반비례한다는 것도 발견했는데, 이것은 영어권에서는 ‘보일(Boyle)’의 법칙이라 일컫는다.

맹점이라는 개념에 담긴 은유적 함의는 아주 풍부하다. 어떤 상황에서 이상하게 잘 감지되지 않는 내용들이 있다는 경험은 누구나 다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깨닫기가 쉽지 않다. 좀 더 넓은 의미로 비유해 보면, 어떤 특정한 방향의 시각을 가졌을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고, 보이더라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생긴다. 장애인을 생각하지 않고 만든 지하철역 같은 시설은 우리 사회에서 요즘에야 깨닫기 시작한 맹점이다. 눈 밝은 젊은 사람들이 만든 설명서 등은 글씨가 너무 깨알 같아 노인들은 전혀 읽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어른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아이들은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과학 연구를 할 때도 자기의 관점에서 별로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중요한 요인들을 간과하는 일들이 생긴다. 예를 들어 의학 분야 연구는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는 없기 때문에 특히 쥐를 사용한 동물실험에 많이 의존하는데, 다루기 더 쉬운 수컷 쥐만 대상으로 실험하는 바람에 여성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 연구결과가 양산되었다는 지적이 최근 많아졌다.

망막에 있는 맹점을 다시 생각해 보면 좀 역설적인 의미도 있다. 시각에 필요한 시신경이 지나가는 자리이기 때문에 시각세포를 두지 못하는 것이다. (문어 같은 동물은 눈의 구조가 인간과 많이 달라 맹점이 없다. 척추동물은 모두 맹점이 있다고 한다.) 맹점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시각에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우리가 맹점을 알지도 못하고 잘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이 두 개 있을 뿐 아니라 항상 움직이면서 뭔가를 보기 때문에 어떤 것이 계속 맹점에 놓여 있어 보이지 않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렇게 다양한 시각 없이 뇌에서 정보를 편집하는 데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그렇다는 것도 감지하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들이 될 것이다. 은유적인 맹점을 극복하는 데도 다양한 시각을 가지는 것 이상의 방법은 없으리라.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