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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교육과 뗏목 버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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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뉴턴역학은 행성의 운행을 포함하여 물체의 운동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했다. 우주의 궁극적 이론이 완성됐다고 여겨질 정도로 성공적이었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멀리 떨어진 두 물체가 어떻게 서로 힘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 내가 지금 보는 태양은 8분 전에 태양을 떠난 빛인데, 어떻게 지금의 태양이 지금의 지구를 끌어당길 수 있는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도 이를 알아차렸던 것 같지만, 이 문제는 뉴턴역학의 엄청난 성공에 파묻혀 넘어갔다.

이후 전자기 현상은 뉴턴의 역학 모형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여기서 혁명적인 돌파구를 찾음으로써 뉴턴역학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동시에 현대물리학의 핵심적인 개념 체계를 마련했다.

뉴턴 역학 뛰어넘은 현대 물리학
기존 틀 벗어난 개념으로 시작돼
강을 건넌 뒤에는 뗏목을 버리듯
새로운 사고력 키우는 것이 교육

뉴턴의 만유인력이나 쿨롱(Coulomb, 1736~1806)의 전기력에 관한 법칙은 두 물체가 서로 힘을 주고받는 것으로 표현한다. 패러데이는 여기서 벗어났다. 그는 전하가 영향을 미쳐 공간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했다. 이 변화를 화살표를 사용하여 전기력선으로 표현했다. 이를 전기장이라고 한다. 이에 의하면 두 전하가 직접적으로 서로 힘을 주고받지 않는다. 한 전하가 전기장을 만들면서 공간을 바꾸면, 이 바뀐 공간이 다른 전하에게 힘을 작용한다. 질량도 전하처럼 공간을 변화시킨다. 지구가 중력장을 만들면서 공간을 바꾸면, 이 바뀐 공간이 물체를 지구로 끌어당긴다. 이에 의하면 이 순간의 태양이 지금의 지구를 끌지 않는다. 8분 전의 태양이 공간을 변형시켰고, 그 변형된 공간을 따라 지금의 지구가 움직인다.

뉴턴의 우주에서는 물체가 진공 상태의 공간을 떠돌아다닌다. 공간은 물체가 놓여있는 장소이지만, 물체에 의해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림을 그리려면 화폭이 필요하듯이, 물체가 머무는 장소로서 공간이 필요하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도 화폭이 있는 것처럼, 우주 안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공간은 있어야 한다. 우주의 구성이나 배치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펼쳐지는 이 공간을 절대공간이라고 한다. 패러데이에서부터 이 고전적 우주관에서의 탈출이 시작됐다. 물체가 전기장이나 중력장을 통해 공간을 변화시킨다는 혁명적인 세계 이해가 시작됐다. 이는 아인슈타인을 거치면서 확고해졌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질량이 뿜어내는 중력장이 시간과 공간을 휘게 한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이로써 존재자와 상관없이 펼쳐지는 절대시간이나 절대공간은 성립할 수 없음이 명확해졌다.

뉴턴이나 패러데이나 아인슈타인은 과학사에서 겨우 몇 번 있었던 인상적인 사례다. 이런 경우만 본다면 교육은 할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업적은 가르침을 잘 계승하기만 한 것으로는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본공으로 일했던 패러데이는 초보적인 정규교육만 받았다. 아인슈타인도 학교 성적은 우수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사례만 보면 교육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존의 배경지식이 없다면, 모든 과학자는 그리스의 소피스트 수준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몰두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남들과 달리 독창적으로 사고하면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대담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배경지식은 갖춰야 하지만, 그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강경』의 비유를 빌리면,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 뗏목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뗏목에서 벗어나야 신세계가 열린다.

신세계를 열기 위해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해법이 없을 정도로 어려워 보이지만 이는 의외로 간단하다. 기본적이고 원리적인 내용을 가르치면 된다. 반도체 공정의 첨단기술은 6개월이면 달라지지만, 양자역학을 비롯한 작동의 기본 원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기를 갖추고 독창적으로 사고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상황에 폭넓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한 창의성이다.

이는 패러데이나 아인슈타인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하다. 반도체 공정의 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기존의 공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이룩해야 할 작은 진보라 하더라도 기존의 틀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커다란 진보와 같다.

지붕에 오르려면 사다리가 필요하지만, 사다리에서 벗어나야 지붕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상황에서나 그렇다. 더구나 이는 과학기술뿐 아니라 학문과 예술의 전 영역에서 그럴 것이다. 교육은 기본기를 충실히 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면서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진보의 추동력을 키워줘야 한다. 최신 공정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공정을 찾아낼 수 있는 사고의 힘을 키워주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