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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청년들 농촌으로 가라’고 한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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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양대 아이러니가 있다고 한다.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인 것과 중국이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중국인들이 이재(理財)에 밝다는 의미다. 중국에서 공산당 정권이 장기간 집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중국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큰 불만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런 중국에서 이념의 물결이 경제생활을 뒤덮은 적이 있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자본주의의 길을 가려 한다’는 소위 주자파(走資派)를 숙청한 문화대혁명(1966~76) 때였다. 마오의 첨병 노릇을 한 세력은 중고대학생이 주축이 된 홍위병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약탈과 파괴가 사회 문제가 될 지경에 이르자 마오는 ‘노동을 통해 학습하고 농촌에서 배우라’며 지식인과 학생들을 대거 농촌으로 내려보내는 하방(下放) 운동을 전개했다.

그 시절의 하방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광둥성이 2025년 말까지 대졸자 30만 명을 농촌으로 보내 풀뿌리 간부·자원봉사자로 일하게 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문화대혁명 때의 하방이 정치적 이유였다면 이번은 경제적 이유다. 청년 취업난이 심해지자 정부가 젊은이들의 귀향과 농촌 구직활동 독려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그러자 소셜미디어(SNS)가 들끓었다. “실업과 취업난 해결을 위해 당국이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하방뿐이냐” “농촌으로 가는 것은 정부가 도와주지 않아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비아냥들이 넘쳐났다.

?2022년 1월 18일, 중국 북부의 한 시골에서 복숭아나무를 기르는 청년 노동자. 사진 셔터스톡

?2022년 1월 18일, 중국 북부의 한 시골에서 복숭아나무를 기르는 청년 노동자. 사진 셔터스톡

중국의 청년 실업난은 실제로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4월 청년 실업률은 20.4%를 기록했다.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로 2018년 10.1%였던 데서 5년이 채 안 돼 두 배로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허난성 한 국유 기업 담배공장이 신규 채용한 생산직의 30%가 석사 학력자였고, 지난 2월 산둥성의 한 국유 기업이 1000명을 모집하는데 지원자 10만 명이 몰렸다고 한다. 방역 완화 이후 경제가 회복돼 취업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던 기대와 달리 일자리를 찾지 못한 대학 졸업생들은 노점에 좌판을 벌이거나 허드렛일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실업난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전국적인 ‘셧다운’ 사태였다. 베이징 등 대도시들이 걸핏하면 전면 봉쇄됐다. 또 부동산·사교육·빅테크(거대 정보기술 기업)에 대한 고강도 규제 등으로 관련 기업들이 대대적인 감원에 나서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의욕을 잃은 청년들 사이에 탕핑(躺平·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탕핑족이 생겨났고, 문호 루쉰의 소설 『공을기(孔乙己·쿵이지)』에서 따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고 체념하는 ‘쿵이지 문학’이 유행했다.

고도 경제성장 속에서 풍요롭게 자란 중국의 20∼30대는 과거 고난의 세월을 겪었던 선배 세대들에 비해 중화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민족주의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6·25 전쟁을 중공군의 영웅적인 승리로 그린 영화 〈장진호〉가 2021년 중국 역대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고 중국의 ‘우주 굴기’를 다룬 〈유랑지구2〉 같은 애국주의 영화들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한 것은 주력 소비층이자 애국심 충만한 젊은 관객들이 티켓 파워 덕분이었다. 신장 지역의 인권 문제를 거론했다거나 신장에서 생산한 면화 사용을 중단했다는 이유로 글로벌 패션 브랜드 H&M, 아디다스 제품 불매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을 견제하는 서방을 비판하고 애국주의 여론을 조성하며 흡사 과거 홍위병처럼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전위대 역할을 해 온 것도 젊은 층이었다.

하지만 이런 애국주의도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선 시들해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전위 조직인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 단원 수가 감소하고 있다. 지난달 공청단 중앙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청단원은 7358만명으로, 한해 전보다 13만2000명이 줄었다. 특히 공청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 단원(4016만3000명)이 1년 사이 8.3% 급감했다. 지난해 11월 19명의 사상자를 낸 신장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를 계기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발해 ‘백지 시위’를 주도한 것도 대학생들 중심의 젊은 층이었다.

?2020년 5월, 중국 상하이의 지하철 풍경. 사진 셔터스톡

?2020년 5월, 중국 상하이의 지하철 풍경. 사진 셔터스톡

정부의 소극적 대응도 청년들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재난 지원금을 지원해 소비를 진작시킬 것을 건의했지만, 중앙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지방 정부들만 지원금을 지급했을 뿐이었다. 최근 딩쉐샹(丁薛祥) 부총리가 청년층 취업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지만, 당국이 내놓는 관영 기관·국영 기업 고용 확대, 신규 채용 민간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 청년 창업 자금 금리 우대 혜택 등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구호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와중에 당국이 ‘농촌으로 내려가라’고 청년들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이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홍콩 힌리치 재단의 전문가 앨릭스 카프리의 말을 빌려 “백지 시위가 의미하는 것은 중국의 도시에서 분출된 분노”라며 “잘 교육받은 청년층이 들고일어난다면 공산당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시진핑 주석이 주창한 ‘위대한 중화민족 부흥’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했던 젊은이들이 공산당 정권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충형 차이나랩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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