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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불안과 혼선의 31분…허술했던 북한 미사일 도발 대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유와 지침 없는 깜깜이 문자, 구체적인 일본과 대비

북 미사일 2분 내 서울 오는데 포착에서 경보까지 14분

‘실제 상황’ 언제든 펼쳐질 수 있다는 것 잊지 말아야

오전 6시32분, 사이렌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집 안 화재 경보가 아니라 밖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확인하고 TV를 켜거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사이렌의 정체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방송 채널을 여기저기로 돌리던 때 휴대전화에 ‘위급 재난 문자’가 왔다.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때가 오전 6시41분. 사이렌과 함께 경보가 발동된 때로부터 9분 뒤였다. 어제 아침 서울 시민이 겪은 일이다.

무엇 때문에 경보가 발령된 것인지, 대피 준비만 하고 밖으로 나오지는 말라는 것인지, 대피하게 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문자 메시지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생필품을 챙겨 밖으로 나온 시민과 출근길에 집으로 되돌아간 직장인도 있었다. 그즈음 TV와 인터넷은 북한이 발사체를 남쪽으로 쏜 게 확인됐다는 합참 발표를 전했다. 정보에 목마른 시민들이 몰린 네이버는 잠시 먹통이 됐다. 불안감이 더 커졌다. 그래도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전 7시3분, 다시 휴대전화가 요동쳤다.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립니다.’ 행정안전부의 메시지였다. 사이렌에서 행안부의 문자까지, 그 31분은 허술하고 안이한 우리의 북한 도발 대비 태세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시민들은 서울로 미사일이 날아온 것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이것이 진짜 공습이었다면’이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이 밝힌 발사체 발사 시간은 6시27분이고, 우리 군이 이를 포착한 게 29분이다. 서울에서 경보가 울린 것은 6시32분. 발사에서 경보까지 5분 걸렸고, 위급 재난 문자 전송까지는 9분이 추가된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서울까지 날아오는 데 2분이면 충분하다. 공중에서 요격하지 못하면 수 분 안에 다량의 미사일과 포탄이 서울에 떨어질 수 있다. 그런 비상 상황에선 5분도 긴 시간이다. 14분이면 ‘공습 상황 끝’일 수도 있다. 북한 도발 동향 사전 포착, 발사 확인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경보 발령에 이르는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경보가 뒷북이면 쓸모가 없다.

경보 내용과 전달 체계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어제 아침 일본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전송된 메시지에는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대피하라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있었다. 밑도 끝도 없이 대피 준비를 하라고 한 우리 것과 대비된다. 어제 경보 발령을 놓고 행안부는 서울시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했다고 하고, 서울시는 과잉 대응이라고 볼 수 있으나 잘못된 조처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게 정부 내에서조차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제 일로 많은 국민이 비상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우리는 정전(停戰) 상태의 나라에 살고 있다. 불시에 북한 미사일이 머리 위로 날아오는 ‘실제 상황’이 언제든 가능할 수 있다. 너무 쉽게, 자주 잊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