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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아내 욕창, 싹 사라졌어요"…팔순 남편 웃게한 이 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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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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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범 서울신내의원 원장(오른쪽)과 간호사가 환자의 집을 찾아 진료 하고 있다. 이 원장은 매주 이 환자 집을 방문해 진찰한 뒤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한다. 사진 서울신내의원

이상범 서울신내의원 원장(오른쪽)과 간호사가 환자의 집을 찾아 진료 하고 있다. 이 원장은 매주 이 환자 집을 방문해 진찰한 뒤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한다. 사진 서울신내의원

"너무 편리합니다. 오늘도 왔다 갔어요."

방문진료 참여 의사 증가 추세 #병원 오기 어려운 환자 급증 탓 #총 의료비 줄고 만족도 높아 윈윈 #"부담률 환자 기피, 문턱 낮춰야" #

서울 중랑구 A(81)씨는 26일 오후 기자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의사가 집으로 오니 너무 좋다"고 여러 차례 반복했다. A씨 의사가 집으로 오기 전에는 일주일마다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고 한다. 거동을 못 하는 치매 환자 아내 B(78)씨를 휠체어에 앉혀 집 근처 병원으로 10분가량 걸어갔단다. 1년에 한 달가량 입원하곤 했다. 이제는 왕진 의사 덕분에 이럴 일이 없다. 그의 아내는 10년째 치매를 앓고 있다. 서서히 증세가 나빠져 2년 전 거동을 아예 못하게 됐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가끔 헛소리한다. A씨는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근육이 굳지 않게 쉼 없이 팔다리를 주무른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아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A씨는 "왕진 의사 선생님 덕분에 이제는 안심이 된다"고 말한다. 아내에게 이상 징후가 있으면 딸이 왕진 병원의 간호사에게 전화해서 해결한다.

A씨는 요양보호사가 오는 오전 8~11시 하루 딱 3시간동안 집 주변을 걷는다. 기자가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걱정하자 그의 대답. "우하겠는교." 그는 선잠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아내가 잘 자는지, 이불을 덮고 있는지 수차례 확인하고 체위를 바꿔준다. 그는 "나를 보고 시집 왔는데, 어떡하겠느냐, 책임져야지"라고 말한다. 그도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심장병 환자이다. 당뇨병도 있다.

와상환자의 최대의 적은 욕창이다. A씨의 아내도 심했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이 이상범 서울신내의원 원장(대한재택의료학회 대외협력이사)이다. 이 원장은 매주 방문진료를 나온다.  26일 왕진 때 소변줄을 갈고 뇌 영양제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했다. 이 원장은 "와상환자는 식사를 하다가 사레가 들면 폐렴이 생길 수 있다. 청진기로 숨소리를 확인하고 열이 안 나는지, 소변줄이 막히지 않았는지 반드시 확인한다"고 말한다.

환자 대변 기저귀 가는 의사  

이 원장은 8개월 전 B씨 방문진료를 시작했을 때 대변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했다. 변을 욕창 부위에 묻히지 않는 법, 운동법, 체위변경법 등을 교육하고 소독·약물치료를 병행했더니 5개월여만에 욕창이 사라졌다. 이 원장은 A씨 부부가 1년 전 부산에서 상경했고, 근처에 딸이 살고, 어머니를 살뜰하게 챙긴다는 등의 소소한 가정사를 꿰고 있다. 주치의와 다름없다. 이 원장은 "환자 환경에 맞춰 치료 계획을 세우고, 어떨 때는 공공기관의 복지 자원과 연계한다"고 말한다. 한 번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 환자가 의료·복지 서비스를 거부해 구청 담당자에게 연락했고, 설득 끝에 요양원에 입소시켰다.

방문진료 또는 재택의료에 참여하려는 의사들이 증가하고 있다.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이 증가하면서 병원에 오기 힘든 환자가 급증하자 관심이 늘어난다. 정부가 초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다양한 형태의 '찾아가는 의료서비스'를 내놓는 점도 의사의 관심을 끌어낸다. 복지부가 최근 일차의료 방문진료(왕진) 의사 신청을 받았더니 동네의원 349곳, 한의원 1578곳이 신청했다. 1년 전 3차 공모 때 동네의원은 200곳이, 한의원은 2년 전 1348곳이 신청했는데, 이번에 크게 늘었다. 동네의원 1~4차 신청기관 중 동네의원 858곳, 한의원은 2802곳이 방문진료에 참여 중이다. 이번에 신청한 채종걸 동광한의원(서울 동대문구) 원장은 "장애인단체 진료 활동을 해보니 이들이 병원을 선택해서 다니기 힘들어하더라. 노인도 병원에 가기 힘든 사각지대임이 분명하다. 그런 환자와 대화하고 상담해주고, 혈압·당뇨병 관리하고, 화병 환자를 한방의료로 접근하면 보람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입원 23%, 요양원 입소 88% 줄어  

환자는 방문진료에 환호한다. 건강보험공단 건보연구원 유애정 통합돌봄연구센터장과 최재우 부연구위원은 2019년 12월~2022년 1월 통합돌봄 선도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한 방문진료를 분석해 SCI급 국제학술지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Directors Association(JAMDA)'에 논문을 실었다. 방문진료를 받은 환자 538명의 입원율이 23%, 요양원 입소율은 88% 감소했다. 집 거주 기간이 8.3일 늘었다. 이 덕분에 진료비가 155만원 줄었다. 서비스에 만족하거나 궁금증이 해결됐다는 응답자가 각각 80%에 달했다.

방문진료를 선호하는 압도적인 동기는 '거동이 불편해서 이동이 어렵다'는 점이다. 응답자의 47%가 이 점을 꼽았다. 연구팀은 성인 인구의 0.7%인 27만명이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의료 이용에 제약을 받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다음 동기로는 편리함, 주기적 건강체크 등이 뒤를 이었다. 다소 이색적인 동기가 나왔다. 바로 '말동무가 돼 준다(4.3%)'이다. 노인이 얼마나 외로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연구팀은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이 연계한 방문진료 팀이 환자를 찾아가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상범 원장은 "거동이 어려운 환자는 야간이나 휴일에도 방문진료가 필요할 때가 있어 야간·휴일 수가를 만들면 좋겠다"며 "본인부담금이 진료비의 30%라서 적지 않은 환자가 이용을 꺼린다.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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