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수도 브라질리아에 있는 대통령궁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8년 만에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8년 재선에 성공한 뒤 부정선거 시비로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제재를 받으며 국제 사회에서 고립됐던 마두로 대통령은 룰라 대통령의 지원 속에 사실상 국제 외교 무대로 복귀했다.
로이터통신과 가디언·이코노미스트 등에 따르면, 이날 마두로 대통령이 의장대의 환영을 받으며 브라질리아의 대통령궁에 입장하자 룰라 대통령은 그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며 환대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30일 열리는 남미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전날 밤 브라질에 도착해, 이날 룰라 대통령과 비공개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룰라 대통령은 “우리는 역사적 순간을 살고 있다”면서 “아마존 열대우림을 공유하는 이웃끼리 대화 없이 이렇게 오랜 세월을 흘려보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마두로 대통령이 이곳에 온 것은 그의 복귀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룰라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제재에 대해 “지나치다”며 맹비난했다. 그는 “한 나라(미국)가 다른 나라(베네수엘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900가지 제재를 가한다는 건 믿을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선호한다는 나라들이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사람(마두로 대통령)을 배제하는 게 너무 황당하다”며 “(서방은) 베네수엘라에 대해 너무 큰 편견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두로 대통령 역시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 해제를 미국에 요구하기 위해 남미 정상들에게 공동 대응하자고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룰라 대통령에게 “베네수엘라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가입을 원한다”는 뜻을 전달하자, 룰라 대통령은 “찬성하고 지지한다”면서 마두로 대통령의 국제 외교 복귀를 지원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브라질 방문은 2015년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정상회담 이래 8년 만이다.
앞서 마두로 대통령은 2018년 대선에서 67.8%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야권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국회의장이던 후안 과이도는 2019년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일본·영국·프랑스·아르헨타나 등과 함께 과이도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마두로 정부를 고립시켰다.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2019~2022년 재임) 역시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취임 직후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리고 베네수엘라와 공식 단교한 바 있다.
한때 “다리가 붕괴됐다”(스페인 EFE통신)고 표현될 만큼 국제 사회에서 배제됐던 마두로 정권은 최근 중남미 핑크타이드(온건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현상) 부활,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공급 문제 심화 등으로 발언권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1월 취임한 룰라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의 우군이 됐다. 룰라 대통령은 취임 직후 베네수엘라와의 외교 관계를 복원하고 카라카스 주재 브라질 대사관에 외교관을 공식 파견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도 최근 2018년 이후 공석이었던 베네수엘라 주재 칠레 대사를 지명했고,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역시 지난해 말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다시 개방했다. 이들은 모두 좌파 정권으로 분류된다.
미국은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부족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석유 부국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에 대한 압박을 다소 완화했지만, 대다수의 제재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한편, 30일 브라질리아의 이타마라치 궁전에서 열리는 남미 정상회의에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를 포함해 아르헨티나·칠레·콜롬비아·볼리비아 등 12개국 남미 국가 정상이 참석한다. 이 자리에선 미국과 유럽연합(EU) 중심의 국제 질서에서 벗어난 지역 협의체 강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