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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중소돌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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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중소돌의 기적’은 K팝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4인조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가 얻은 수식어다. 지난해 11월 데뷔한 이 팀이 주목받은 가장 큰 이유는 4대 기획사(하이브·SM·JYP·YG) 쏠림 현상 속에서 오랜만에 나온 중소업체 성공 모델이기 때문이다. 4대 기획사 아니면 연습생 구하기조차 힘들다는 요즘, 음악 중소기업이 취할 수 있는 차별화된 전략을 제시한다.

무결점 비주얼과 완벽한 스타일링, 숨 쉴 틈 없는 춤을 보여주는 K팝은 ‘비싼 장르’다. 완성도를 위해 좋은 자원을 아낌없이 투입한다. 이렇게 해야 팬덤이 모이고, 핵심 팬덤이 단단할수록 안정적인 음반 매출과 상품 판매를 기대할 수 있다. 데뷔 전 오랜 연습 기간도 모두 비용이다. 돈 써야 할 곳은 많고, 잘 될 확률은 매우 낮아 더 큰 비용을 쓰면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구조로 진화해 왔다. 이렇게 준비해도 이른바 ‘망돌’이 되는 것은 순간이다. 이럴 경우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피프티 피프티’는 처음부터 이 게임에서 빠져버렸다. 1990년대 한국 발라드 전성기에 일을 시작한 환갑의 경영진이 세운 신생 기획사 어트랙트는 현재 유행하는 K팝 문법으로 말하지 않는다. 여러 장르를 혼합하지도 않고, 오래전 나온 음악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유행가스럽다’. 결과적으로 진입 장벽 없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특징이 생겼다. ‘큐피드-쌍둥이 버전’(영어버전)이 틱톡 유행을 타고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한 뒤 9주 연속 머무르는 기록을 써 가는 중이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영상 등에선 기존 K팝 팬이 아닌 일반 청자의 반응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K팝은 몰랐는데 딸이 소개해줘 잘 듣고 있다’는 내용이 다수다. 피프티 피프티는 국내에서 성공을 증명한 걸그룹만이 해외로 갈 수 있다는 상식도 깼다. 해외에서의 인기로 국내 음원 차트에 역수입돼 상위권에 올라있다.

물론 이제 막 데뷔한 이들이 다음 앨범에도 똑같이 성공하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대중음악 산업에서 다양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 좋은 사례라 의미 있다. 앞선 K팝 그룹의 성공 공식은 참조 대상일 뿐, 각자 가야 할 길은 어차피 모두 다르다는 교훈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