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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수박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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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문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위문희 정치부 기자

위문희 정치부 기자

수박은 예부터 ‘자손만대(子孫萬代)’의 의미를 지녔다. 씨가 많은 것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만대는 덩굴의 한자어 만대(蔓帶)와 발음이 같다. 만대(萬代)에 이르도록 자손이 번성하라는 뜻이다.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1504~1551)은 8폭짜리 ‘초충도(草蟲圖)’ 병풍 한 폭에 수박을 그려 넣었다. 신사임당은 상징적인 의미가 큰 식물·곤충·동물을 소재로 한 ‘초충도’를 여러 점 남겼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수박과 들쥐’ 그림에서 자손만대를 축원하는 마음이 잘 나타난다.

귀하고 값비싼 수박은 조선시대 임금님 진상품 중 하나였다. 진초록색 껍질에 줄무늬가 없는 무등산 수박은 보통 수박보다 두세 배 크고 단맛이 풍부해 진상품으로 이름을 날렸다. 경남 함안과 전북 고창은 오늘날 대표적 수박 산지다. 계절 따라 봄 수박은 함안, 여름 수박은 고창 수박이 유명하다.

함안 지역은 1800년대부터 수박 재배를 시작했다. 낙동강 유역의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이 어우러져 수박의 당도가 높다. 고창은 1970년대 산지를 개간한 곳에 수박을 심었다. 비산비야(非山非野)인 고창은 야트막한 산들이 많다. 물이 잘 빠지는 토양으로 바꿔 배수가 중요한 수박 농사에 성공했다. 고창에선 “물 대신 수박을 먹으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수박의 과육은 90%가 수분이다. 『동의보감』은 수박이 입 안이 허는 구내염에 좋다고 소개했다. 그 방법은 “수박 속의 물을 천천히 마시라”다.

맛도 좋고 쓰임새도 많은 수박이지만 정치권에선 찬밥 대접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이 비이재명계 의원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이들은 비명계 의원들의 지역구까지 찾아가 수박 깨기 퍼포먼스를 벌인다. ‘전국수박생산연합회’ 이름으로 비명계 의원들의 생일 축하 현수막을 국회 앞에 내걸기도 한다. 이재명 대표가 24일 유튜브 방송에서 “‘수박, 수박’ 하지 말자니까요”라고 호소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바야흐로 수박 철이 다가오고 있다. 민주당 내에선 당 혁신방안을 놓고 계파 간 신경전도 고조되고 있다. 과일은 제철 과일이 최고다. 철 지난 과일은 맛이 없다. 수박 논쟁도 한철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