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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경찰·기자서 여야 핫라인으로…월요일마다 밥먹는 두 남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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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원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일 국회에서 이뤄진 첫 회동에서 만나 웃으면서 악수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윤재원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일 국회에서 이뤄진 첫 회동에서 만나 웃으면서 악수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지난 22일 정오 서울 여의도 한 중식당에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들어섰다. 원탁을 가운데 두고 마주한 두 원내대표는 곧장 웃는 얼굴로 담소를 나누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화제는 25일이나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투표에 부쳐질 간호법 얘기로 흘렀다. 윤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께서 저희가 제안한 중재안을 간호협회와 다시 상의해달라”고 하자 박 원내대표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간호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절충안을 찾기 위해 두 원내대표가 머리를 맞댄 것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처럼 두 원내대표의 비공개 주례회동이 꽉 막힌 여야 관계에 숨통을 트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재옥·박광온 원내대표는 지난 5월 8일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오찬을 하면서 각종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윤 대통령이 취임 1년간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회동을 하지 않는 데다가 여야 대표의 정기 회동도 없는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는 “윤-박 회동이 여야 대화의 유일한 창구”라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인사는 2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5월 2일 상견례 자리에서 두 원내대표가 ‘자주 만나는 게 좋다. 오찬을 기본으로 하고 필요하면 저녁에 소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자’며 주례회동을 갖는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인사도 “두 사람의 전임이던 주호영-박홍근 전 원내대표도 자주 만났기에 ‘우리도 뒤질 수 없다’며 주례회동을 약속했다”고 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대표, 박 원내대표, 고민정 최고위원. 김현동 기자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대표, 박 원내대표, 고민정 최고위원. 김현동 기자

지난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에서 처리되면서 25일 본회의 통과를 앞둔 ‘전세사기 특별법’은 두 원내대표가 풀어낸 첫 번째 결과물이다. 여야는 특별법 처리를 놓고 구제 방안에 대해 이견을 드러내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두 원내대표가 두 차례 회동에서 “피해자 구제를 위해서는 정쟁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한 발짝씩 양보하자”고 하면서 실마리를 풀었다.

이에 피해자 임차 보증금의 최우선변제금 부분을 정부가 직접 지원하지 않고 상응하는 금액을 10년간 무이자로 빌려주는 대신, 피해자 인정요건을 완화하는 중재안이 도출됐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소속 의원은 “윤 원내대표가 ‘정부에 지원 폭을 넓히면서 최대한 성의를 보이라고 하겠다’고 하고, 박 원내대표도 ‘빠르게 처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호응하면서 합의 처리가 됐다”고 말했다.

둘은 동병상련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윤재옥-박광온 모두 온건파로 분류되는데, 당내 강경파의 등쌀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윤 원내대표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원내대표는 의석수로 밀어붙이기보다는 합의 처리를 중시하시는 합리적인 분”이라고 했다. 박 원내대표도 통화에서 “윤 원내대표가 우리 당 사정이나 분위기를 잘 이해해주고 또 배려해주신다는 점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둘은 19대 국회에서 금배지를 달기 전 각각 경찰(윤 원내대표)과 기자(박 원내대표)로 만나 인연을 이어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출국하는 가운데 환송나온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 둘째)와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출국하는 가운데 환송나온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 둘째)와 인사하고 있다. 뉴스1

과거에도 원내대표 ‘케미’는 눈길을 끌었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던 추경안 처리를 반대하며 강원도 한 사찰에 칩거하던 주호영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찾아가 설득한 이는 김태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윤재옥·박광온 원내대표는 정치권 입문 전부터 서로를 잘 알던 사이여서 얘기가 더 잘 통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윤재옥·박광온’ 조합이 구체적인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간호법 중재안 마련에 실패할 경우 협치 분위기는 단박에 깨질 수 있다. 박 원내대표는 당 강경파가 밀어붙이는 방송법 해법 마련이, 윤 원내대표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 중점 과제 입법이 고민거리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친명계가 득세한 민주당에서 박 원내대표의 설득력이 얼마나 힘을 얻을지가 관건”이라며 “윤 원내대표도 야당에 강경한 대통령실과 원만하게 조율을 하는 것이 숙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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