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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일 정상 원폭 위령비 공동 참배, 미래 향한 걸음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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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21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외와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설치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으로 참배하고 있다.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참배는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21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외와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설치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으로 참배하고 있다.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참배는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사진 연합뉴스]

윤 대통령·기시다 총리, 한인 위령비 앞 함께 서

과거사 치유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 평가할 만

미래기금 일본 기업 참여 등 적극적 행동 필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어제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설치된 한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했다. 지난 19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히로시마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윤 대통령은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등 회의 참가국 정상들과 양자 및 다자 협력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회의 마지막 날인 어제 기시다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취임 후 세 번째 한·미·일 정상회담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를 미국으로 초청했고, 한·미·일 협력을 보다 돈독히 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윤 대통령은 또 회의장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도 만나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도 했다.

윤 대통령의 방일 일정 중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기시다 총리와 나란히 한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 선 일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숨 가쁘게 진행한 G7 정상회의 마지막 날의 첫 일정으로 함께 한인 희생자 위령비를 찾았다. 그만큼 양국이 과거사 치유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양 정상은 지난 7일 서울에서 만나 12년 만에 셔틀외교를 복원하고, 안보 분야와 경제 협력을 핵심으로 하는 ‘미래를 위한 노력’에 뜻을 모았다. 기시다 총리는 당시, G7 기간 중 윤 대통령과 공동 참배를 제안했고 기자회견에서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하게 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사과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과거사 문제가 소홀히 다뤄졌다는 지적은 여전히 제기됐다. 일부 국내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빈 컵의 절반을 채우기’ 위해 먼저 나선 윤 대통령의 결단에 일본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특히 기시다 총리의 유감 표명성 언급이 “개인적인 견해”라고 전제한 건 일본의 통렬한 반성을 원하는 한국 여론에 미흡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양국 정상이 부부 동반으로 위령비를 찾은 건 과거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한 첫걸음이란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 위주로 해왔다면 이번에는 실천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엊그제(19일) 윤 대통령이 일본을 찾은 당일 오후 히로시마 피폭 한인 1세와 후손 20여 명을 만난 것도 마찬가지 평가가 가능하다. 한·일이 협력의 범위를 확대해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진다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양국의 진정한 화해와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는 양 정상의 위령비 참배가 과거사 정리의 마지막 걸음이 돼선 안 된다. 양국 정부는 위령비를 향한 걸음이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과거를 무시한 협력과 미래는 언제든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발전의 시작은 자기반성부터다. 피해자를 보듬는 작업은 일본의 의무다. 총리 개인의 견해를 넘어선 공식적이고 진정성이 담긴 일본의 사죄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새겨야 한다. 아울러 한·일 미래 파트너 기금의 조성과 운영에 일본 피고 기업이 적극 참여한다면 생산적 한·일 관계가 보다 빨리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