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5년째 등록금 동결…질 높은 대학교육 투자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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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2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학생들이 2023년도 학부 등록금 인상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학생들이 2023년도 학부 등록금 인상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9~2022년 물가는 28.4% 올랐지만 제자리

연구·교육 수준 하락, 등록금 현실화 검토할 때

국내 최초 ‘반값 등록금’을 도입했던 서울시립대가 얼마 전 ‘등록금 정상화 공론위원회’를 구성했다. 사실상 등록금을 인상하겠다는 신호다. 2011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공약에서 시작된 시립대의 ‘반값 등록금’은 오히려 대학 재정을 악화시키고 교육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6년에는 박 전 시장이 ‘등록금 면제’까지 추진하자 학생들이 오히려 우려를 표하며 무산됐다.

처음 등록금 동결 이슈가 나왔던 2009년에는 대학의 방만한 학사 운영과 지나친 등록금 인상이 문제였다. 2009년 이후 동결 상태인 등록금과 달리 소비자물가지수는 2009년 83.9에서 2022년 107.7로 올랐다(2020년=100).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이 기간 동안 28.4%는 올랐어야 실질적인 ‘등록금 동결’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다수 대학은 정부 규제로 등록금에 손을 대기 힘들었다.

2023학년도 대학 등록금 현황. [연합뉴스]

2023학년도 대학 등록금 현황. [연합뉴스]

그러자 여기저기서 구멍이 생겼다. 경북의 한 국립대는 1년 예산이 1000억원가량인데, 이 중 대학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교육·연구 및 학생지도 예산은 5%에 불과하다. 인건비 등 고정비 비중이 10년 전 30%대에서 70%로 급증한 탓이다. 전북의 한 4년제 대학은 재정 악화로 전자저널 구독 예산을 절반으로 깎았다. 서울의 한 사립대는 제때 누수 공사를 하지 못해 교수 연구실 천장이 무너지는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이 비현실적인 등록금 동결은 대학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 대학 입장에선 15년째 등록금 동결과 입학정원 감소로 수입이 줄고 있으니, 첨단 설비를 도입해 교육력을 높이기는커녕 기존에 있는 노후 건물조차 개·보수할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정부의 재정 지원이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다. 전체 교육예산 대비 실질 고등교육예산(국가장학금 제외) 비율은 2011년 10.8%에서 2020년 9.6%로 감소했다.

가뜩이나 한국의 대학 경쟁력은 세계 수준에 못 미친다. 2022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대학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63개국 중 46위였다. IT와 반도체 등 산업은 최첨단을 향해 달려가지만 여기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은 한참 수준이 떨어진다. 선진국들은 모두 산업의 고도화로 고등교육 투자를 늘려 가고 있는데 우리만 거꾸로 가는 형국이다.

이제는 등록금 현실화를 검토할 때가 됐다. 이미 4년제 대학 193곳 중 17곳이 정부의 페널티를 무릅쓰고 올해 등록금을 인상했다. 지난 1월 4년제 대학 총장 설문조사에서도 49.1%가 ‘올해나 내년 중 등록금 인상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교육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대학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지나치게 억누르고 있는 등록금 규제를 합리적·미래지향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