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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 포기하고 탈출…'펜싱 국대 유망주'도 떠나게한 대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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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세계펜싱선수권대회에 유소년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현 경남대 펜싱부 김나경 선수(오른쪽). 김 선수는 한국국제대 펜싱부에서 지난 3월 경남대로 편입했다. [사진 김나경 선수]

2019년 세계펜싱선수권대회에 유소년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현 경남대 펜싱부 김나경 선수(오른쪽). 김 선수는 한국국제대 펜싱부에서 지난 3월 경남대로 편입했다. [사진 김나경 선수]

“펜싱을 계속 하고 싶어요”
경남 진주 한국국제대 펜싱부 소속 선수였던 김나경(21)씨는 지난 3월 창원 경남대 3학년으로 편입했다. 그가 편입을 결정한 이유는 국제대가 최근 폐교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소속 팀이 사라져 대회 출전길이 막히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컸다고 한다. 김 선수는 2019ㆍ2022년 세계선수권 대회에 각 유소년ㆍ청소년 국가대표로도 출전할 정도로 실력을 갖췄다. 지난달 열린 한 전국대회에선 여자 대학부 에페(Epeeㆍ펜싱 3종목 중 하나) 개인전 우승도 차지했다.

그는 “올림픽 2관왕하고 은퇴 후 국제심판을 하는 게 꿈”이라며 “꿈을 이루려 '펜싱 명문' 국제대에 왔는데, 학교가 언제 사라질지 몰라 불안해 편입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당시 한국국제대 펜싱부 소속으로 훈련 중이던 김나경 선수. 김 선수는 지난 3월 경남대로 편입했다. [사진 김나경 선수]

지난 2월 당시 한국국제대 펜싱부 소속으로 훈련 중이던 김나경 선수. 김 선수는 지난 3월 경남대로 편입했다. [사진 김나경 선수]

떠나는 운동부…체육특기자 아닌 일반 편입

한때 ‘체육특성화대학’ 전환을 추진할 정도로 체육 분야 뛰어난 성과를 거둬왔던 국제대 운동부 학생이 하나둘 떠나고 있다. 실제 국제대는 최근 법원 파산 신청에 교육부 종합감사까지 받으며 폐교가 가시화하고 있다.

21일 경남대 등에 따르면 김 선수 포함 국제대 펜싱부 16명이 지난 3월 경남대에 편입했다. 같은 시기 배드민턴부 3명도 편입 절차를 마쳤다. 이외 국제대 펜싱부(17명), 소프트테니스(4명), 육상(2명)을 희망했던 신입생 27명도 경남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장학금ㆍ기숙사 지원 등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 체육특기자가 아닌 일반 편입생 또는 신입생 자격이다.

훈련장 없어, 버스에서 ‘새우잠’ 자며 이동

편입학이 급하게 진행된 탓에 경남대는 훈련공간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간 경남대가 육성해오던 운동 종목이 아닌 탓이다. 그래서 편입 선수들은 매일 1~2차례 버스를 타고 훈련장이 있는 진주와 숙소가 있는 창원을 오가고 있다. 야간 훈련 뒤, 버스에서 ‘새우잠’을 자며 경남대에 도착하면 새벽 1시가 넘는다.

경남대는 해당 선수들이 대회 출전에 문제없도록 학교 명의로 팀ㆍ선수 등록만 해주고 있다. 경남대 관계자는 “계획에 따라 편입학을 받은 게 아니어서 사실상 동아리처럼 운영되고 있다. 훈련 인프라도 충분치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학기를 끝으로 폐쇄된 한국국제대 학생식당. 안대훈 기자

지난 학기를 끝으로 폐쇄된 한국국제대 학생식당.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 캠퍼스에서 있던 한 카페가 폐업해 텅 비어 있다.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 캠퍼스에서 있던 한 카페가 폐업해 텅 비어 있다. 안대훈 기자

학교 식당 문 닫고…숙소에선 찬물 나와

사정이 이런 데도 운동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난 이유는 국제대 재정난에 선수 훈련 환경까지 무너지고 있어서다. 지난 학기까지 운영됐던 국제대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선수 식단 관리에 차질이 생겼다. 현재 펜싱부 등 일부 운동부는 올 초부터 캠퍼스 내 건물 1층 한 공간을 빌려, 약 50명 선수의 점심ㆍ저녁 식사를 자체 해결하고 있다. 임대료ㆍ식자재비ㆍ조리사 급여 등에만 월 700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 돈은 체육회 등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그전에는 운동부 감독들이 모 업체가 학교 앞에서 선수 식단 관리할 수 있도록 식당 시설비 1500만원을 십시일반 모아 지원하기도 했다. 국제대는 도심서 시내버스로 30분가량 떨어진 외곽에 있다 보니 주변에 선수 식단을 의뢰할 식당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겨울에는 체육특기자들이 ‘무료’로 사용했던 제2생활관에서 보일러가 고장 나 난방도 안 됐다고 한다.

김정관 국제대 펜싱부 감독은 “선수가 굶으면 안 되니까. 임시방편이었다”며 “우리 펜싱부에서만 작년에 20명이 그만뒀다”고 한탄했다.

한국국제대 캠퍼스 내 한 건물 복도에 낙엽과 쓰레기가 가득하다.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 캠퍼스 내 한 건물 복도에 낙엽과 쓰레기가 가득하다.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재학생들.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재학생들. 안대훈 기자

남겨진 다른 학생들도 “불안”

현재 국제대 재학생은 400명 정도라지만 교수는 150여명에서 40여명으로 줄면서 학습권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다. 행정 직원 80명에서 6~7명으로 줄어 사실상 '학사 행정 마비’ 상태다.

일부 재학생은 “차라리 폐교됐으면 좋겠다”라고도 말한다. 실제 전ㆍ현직 국제대 교직원 50여명이 이달 초 “학교 정상화 의지가 없다”며 창원지법에 학교법인 파산 신청을 했다. 향후 파산 결정이 내려지면 교육부는 폐교 절차를 진행하고, 해당 학생들을 특별편입학 대상으로 지원해 학습권을 보장한다.

이와 함께 지난 9~19일 교육부는 국제대를 감사했다. 현행법상 교육부는 경영자가 중대한 과실을 저질러 정상적인 학사운영이 불가능하면 폐쇄를 명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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