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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전기도 끊길 판…"차라리 폐교됐으면" 꿈 접게한 이 대학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8일 오후 경남 진주 문산읍 한국국제대 캠퍼스 내 한 건물 복도에 낙엽과 쓰레기가 가득하다. 안대훈 기자

28일 오후 경남 진주 문산읍 한국국제대 캠퍼스 내 한 건물 복도에 낙엽과 쓰레기가 가득하다. 안대훈 기자

“차라리 학교가 폐교됐으면 좋겠어요”

28일 낮 12시쯤 경남 진주시 문산읍 한국국제대에서 만난 항공부품공학과 4학년 김모(25)씨가 한 말이다. 그는 “학교가 문 닫으면, 인근 대학으로 전입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 아니냐”고 했다.

김씨는 지난 2월 제대하면서 복학했다. “학교가 망해간다”는 얘길 들었지만 1년만 버텨보자는 심정이었다. 타 대학에 편입학하면 2ㆍ3학년부터 다시 시작, 2~3년 더 다녀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학교는 기본적인 학습권조차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씨는 항공부품공학과를 졸업, 항공정비사로 취업하려 했던 계획도 접었다. 그는 “설마설마했는데 이 정도일 줄 몰랐다”며 “편입도 어려운데, 1년을 더 다니려니 막막하다. 학교가 폐교돼 우릴 놔줬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라고 했다.

낙엽ㆍ쓰레기 쌓인 건물…밀린 공과금만 11억원

한국국제대 캠퍼스 내 한 건물 복도에 방치된 쓰레기가 쌓여 있다.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 캠퍼스 내 한 건물 복도에 방치된 쓰레기가 쌓여 있다. 안대훈 기자

캠퍼스 내 여러 건물은 폐허를 방불케 했다. 건물 복도에는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낙엽 더미가 가득했다. 그 주변으로 라면 용기, 과자봉지, 삼각김밥 비닐포장지, 빈 물통 등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대학 캠퍼스 내 10여동 건물은 대부분 폐쇄됐다. 건물 4동에서만 근근이 강의가 진행 중이다.

이번 달 말에는 요금 미납으로 전기와 수도가 끊길지도 모를 처지다. 한국국제대에 따르면 전기ㆍ수도ㆍ인터넷 요금 등 각종 공과금 미납액만 약 11억원이다. 단전되면 학교 측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학생 출입을 먼저 통제해야 하는 실정이다. 심지어 대학본부 건물 승강기는 ‘정기검사 미이행’으로 멈춘 상태다.

학생식당 문 닫아…밥 먹을 곳 편의점뿐

한국국제대 학생식당이 폐쇄돼 있다. 지난 학기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 학생식당이 폐쇄돼 있다. 지난 학기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 편의점에서 학생들이 라면, 삼각김밥,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우고 있다.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 편의점에서 학생들이 라면, 삼각김밥,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우고 있다. 안대훈 기자

재학생 약 450명은 점심을 주로 학생복지관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해결한다. 메뉴는 라면·삼각김밥 등이 전부다. 같은 건물 4층에 있던 학생식당은 지난 학기를 끝으로 폐업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영난으로 식당은 문을 여닫기를 반복하던 터였다. 캠퍼스 내 카페 등 다른 가게도 경영악화로 수년 전부터 하나둘 문을 닫았다.

한국국제대 학생생활관에 있는 한 재학생 방에 햇반, 3분카레, 스팸 등 즉석식품이 가득 쌓여 있다.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 학생생활관에 있는 한 재학생 방에 햇반, 3분카레, 스팸 등 즉석식품이 가득 쌓여 있다. 안대훈 기자

사정이 이렇다 보니 편의점은 41만6281㎡(12만5925평) 규모 한국국제대 캠퍼스에서 학생이 유일하게 끼니를 해결할 장소가 됐다. 약 150명을 수용한 학생생활관(기숙사)에도 방마다 편의점에서 구매한 햇반ㆍ스팸ㆍ3분카레 등 즉석식품이 가득했다.

한국국제대는 도심 외곽지에 위치한 탓에 인근에 식당도 없다. 대학 정문 밖은 곧장 왕복 2차로 도로이고, 주변에는 산과 논밭뿐이다. 가장 가까운 경상국립대(가좌동)이나 진주혁신도시(충무공동)를 가려면 시내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 한다.

한국국제대에서 11년째 편의점을 운영 중인 정모(50대)씨는 “몇 년 전보다 매출이 70~80% 줄었다”라며 “학생들이 밥 먹을 데가 여기밖에 없어, 안타까운 맘에 가게를 못 접고 있다”고 했다.

교직원 3분의 1로 줄어…학사 행정 마비

한국국제대 대학본부 1층에 위치한 '입학홍보처' 사무실이 폐쇄돼 있다.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 대학본부 1층에 위치한 '입학홍보처' 사무실이 폐쇄돼 있다. 안대훈 기자

이 대학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재정이 악화했다. 당시 평가에서 하위권으로 분류됐는데 ‘재정지원 제한 대학’까지 지정되면서 정부로부터 예산지원이나 학자금 대출 등을 제한받았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원자가 급감하고, 재정 상황은 심각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2018년 2900여명이었던 재학생은 올해 450여명으로 감소했다. 입학정원도 많이 줄었다. 앞서 2003년 4년제 종합대학으로 승격 당시만 해도 1265명이었던 입학정원은 올해 393명까지 떨어졌다. 올해 실제 신입생은 27명(충원율 6.9%)에 그쳤다.

이 때문에 교직원 월급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교수·행정직 등 교직원이 2년 간 60%정도 그만뒀다. 현재 회계과ㆍ학생과ㆍ교무처 등 행정 사무를 맡은 직원은 10명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상 학사 행정 마비 수준이다.

직원이 없어 입학홍보처 사무실도 문을 닫았다. 한국국제대 홈페이지 ‘입학상담Q&A’에는 “등록금 입금하려고 하는데 계좌 입금이 안 된다” “학교 측 대표번호는 계속 통화중” 등 답답함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 재학생은 “국가장학금 당첨됐는데, 등록금 고지서가 안 나와서 못 받게 생겼다”며 불안해했다.

임금체불 100억원…통장 압류돼 등록금도 못 받아

한국국제대에 있던 카페가 폐업해 텅 비어 있다.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에 있던 카페가 폐업해 텅 비어 있다. 안대훈 기자

학교 측은 학교 통장이 압류되면서, 교비로 쓸 등록금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학교 계좌로 들어오는 돈이 체불 임금 지급에 쓰인다는 설명이다. 학교를 떠난 교직원들이 지난해 4월부터 하나둘 체불된 임금을 돌려받으려 학교 통장에 압류 신청을 했다. 4년여간 쌓인 임금체불 규모는 무려 100억원에 달한다.

특수체육교육학과에 재학 중인 한 3학년 재학생은 “어떤 교수님은 당장 편입 준비를 하라 하고, 다른 교수님은 졸업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한다”며 “뭐가 맞는지 헷갈려 혼란스럽다”고 했다.

교직원들 “법인, 학교 정상화 소극적”

한국국제대 학생생활관 행정실. 직원이 없는 불 꺼진 사무실에 폐쇄회로(CC)TV만 돌아가고 있다. 안대훈 기자

한국국제대 학생생활관 행정실. 직원이 없는 불 꺼진 사무실에 폐쇄회로(CC)TV만 돌아가고 있다. 안대훈 기자

교직원들은 사립대학인 한국국제대 경영 최종 책임이 있는 학교법인(일선학원)이 학교 정상화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학교 관계자는 “임금체불의 소송 주체는 학교법인이다”며 “법인이 법원에 압류 범위 변경 신청을 하면,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받아 단전·단수라는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다. 그런데 법인이 미적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인 측 관계자는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조차 자기들 임금으로 받아가려 압류를 신청한 것은 (전·현직) 교직원들”이라며 “법인도 미납된 공과금 해결 등 학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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