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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앉아있으면 1만원씩" 중국 유학생 '대리수강' 판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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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학교 강의실 모습. 뉴스1

서울의 한 대학교 강의실 모습. 뉴스1

“고려대. 수업 대신 들어줄 여자 구합니다. 오래 하실 분을 더 선호합니다.”  

“경희대. 남학생 필요하고 모자와 안경을 써 주세요. 2만원.”  

국내 중국인 유학생이 자주 이용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일부 대학에서 단속에 나서기도 했지만 여전히 유학생의 대리수강은 성행 중이다. 수도권·지방대 할 것 없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발 벗고 나서고 있지만 유학생 학사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학기 전체 대리수강 모집도…과제비·시험비는 ‘별도’  

19일 중국인 유학생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보니 대리수강이나 과제 대행 구인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 주요 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생들이 올린 글도 많았다. 성별을 특정하거나 모자, 안경 등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복장을 조건으로 내건 경우도 있었다.

지난주 중국인 유학생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성균관대 대리수강생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지난주 중국인 유학생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성균관대 대리수강생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대리수강은 시간당 1~2만원 수준에 거래됐고, 한 학기 전체 대리수강생을 구한다는 글도 있었다. 한 학기 전체 대리수강비는 과목 당 50~60만원 수준이고, 과제비나 시험비 등은 별도로 붙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연락처를 교환한 이들은 중국인 유학생이 주로 사용하는 메신저 ‘위챗’을 통해 거래를 한다. 서울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 A씨는 “대학마다 중국인이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이 있는데, 대리수강을 구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며 “대리수강뿐 아니라 졸업논문 대필 거래까지 이뤄지는 것도 봤다”고 했다. 학사 졸업논문 대필은 80만원, 석사 졸업논문 대필은 12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고 한다.

지난 1일 중앙대 중국인 유학생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대리수강생을 구한다는 글. 지난달 11일 중앙대에서 유학생 대리수강생 적발 소식이 알려졌음에도 대리수강 구인 모집은 이어지고 있다. 단체 대화방 이름은 2020년 봄에 개설됐다는 뜻이다. 독자제공, SNS 캡쳐

지난 1일 중앙대 중국인 유학생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대리수강생을 구한다는 글. 지난달 11일 중앙대에서 유학생 대리수강생 적발 소식이 알려졌음에도 대리수강 구인 모집은 이어지고 있다. 단체 대화방 이름은 2020년 봄에 개설됐다는 뜻이다. 독자제공, SNS 캡쳐

대리수강이 적발되기도 하지만 구인 모집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11일 중앙대에서는 중국인 유학생이 2022년 2학기 강의 전체를 대리수강하다가 적발돼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 유학생은 지난해 2학기 국내에 체류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적발 이후에도 중앙대 유학생 대화방에는 대리수강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대구 소재의 한 사립대에서는 중국인 유학생의 대리수강이 적발돼 2~4주 근신 처분을 받기도 했다.

“학위만 따면 돼”…비대면·마스크 수업에 대리수강 늘어

유학생들은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대리수강이 늘었다고 말한다. 2020년 이전에는 방학 중 귀국하는 학생 일부가 계절학기를 대신 들어줄 사람을 구하는 정도였는데, 코로나19 이후부터 정규학기에도 대리수강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5년간 유학 중인 중국인 손모씨는 “비대면 수업이 확대되고 강의실에서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대리수강이 늘어난 것 같다”며 “중국인 유학생 사이에서 한국 유학 시 대리수강생을 구하거나 과제 대행을 맡기는 게 더는 비밀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학위 취득만을 목적으로 한국 대학에 진학하는 중국인 유학생이 늘어나며 대리수강이 증가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해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16만6892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는데, 40%가 넘는 6만7439명이 중국인이다. 손 씨는 “중국 대학보다 한국 대학에 진학하는 게 훨씬 쉽기 때문에 학위 취득용으로 한국에 오는 중국인들이 많아졌다”며 “덩달아 대리수강으로 생활비를 버는 유학생도 늘었다”고 했다. 또 다른 중국인 유학생은 “한국 대학 졸업장이 있으면 귀국해 한국어 강사가 되거나, K콘텐트 흥행으로 미디어 분야에 진출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대학원 진학도 한국이 중국보다 훨씬 쉽다”고 했다.

“외국인 유학생 자격 요건 강화해야…적발 시 단호히 대처”

지난 3월 중국인 유학생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대리출석 구인 글. 독자제공, SNS 캡쳐

지난 3월 중국인 유학생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대리출석 구인 글. 독자제공, SNS 캡쳐

지난 3월 중국인 유학생 단체 대화방에 당일 대리출석이 가능한 사람을 구하는 글도 올라왔다. 독자제공, SNS 캡쳐

지난 3월 중국인 유학생 단체 대화방에 당일 대리출석이 가능한 사람을 구하는 글도 올라왔다. 독자제공, SNS 캡쳐

대리수강을 막기 위해서는 유학생의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수업을 이해하기 어려워 결국 포기하고 대리수강을 찾는 학생들도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무분별한 유학생 유치를 막기 위해 한국어 능력이 한국어능력시험(TOPIK) 3급 이상인 학생들만 선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TOPIK 3급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수준'이다. 서울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TOPIK 3급 수준으로는 한국어로 진행하는 대학의 전공 수업을 따라가긴 어렵다”고 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재정난을 겪고 있는 국내 대학 입장에서 현실적 한계로 양적인 유학생 유치에만 집중해 질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는 측면이 있다”며 “자격 없는 유학생을 유치하는 것은 대학의 도덕성과도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유학생의 선발 및 자격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중국 뿐 아니라 각국의 외국인 유학생이 증가하는 만큼, 대리수강 적발 시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왔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뿐 아니라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등 학생들도 늘어나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방치하면 한국 대학 전반에 대한 시선이 안 좋아질 것”이라며 “유학생이 의도적·지속적으로 대리수강을 할 경우 비자 정지 등 정부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고, 각 학교는 대리수강의 불법성과 적발 시 처벌 조치를 유학생에게 충분히 고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학이 유학생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중국인 유학생 사이에서도 엄격한 출석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사립대에 재학 중인 한 중국인 유학생은 “열심히 공부하는 유학생이 더 많은데, 일부 학생의 행동으로 모든 중국인 유학생의 노력이 평가절하될까 우려된다”며 “대학에서 더 엄격하고 꼼꼼하게 관리한다면 대리수강도 줄고, 학업 성취나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배상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순수하게 열의를 갖고 온 유학생도 한국에 왔을 때 언어·교우관계 등 현실에 부딪히다 보니 대리수강의 유혹에 빠지거나 더 나아가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며 “한국 대학이 중국인 유학생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게 아니라 소속 학생으로서 더 눈길을 주고 체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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