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과 40% 날릴판"…이상고온 뒤 냉해까지, 과수원 울고싶다

중앙일보

입력

채한식(61)씨는 경남 거창군 고제면에서 4000㎡(약 1200평) 규모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요즘 과수원을 돌아볼 때마다 채씨는 속이 타들어 간다. “올봄 개화(꽃이 핌)가 너무 빨랐고, 냉해까지 심하게 입었다”며 “지금 상태라면 40% 정도는 수확하지 못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상기온에 과수 농가가 시름에 빠졌다. 봄철 ‘반짝’ 더위로 꽃이 지나치게 일찍 피고 지어서 과일이 제대로 영글지 못하고 있다. 연이어 닥친 저온 현상이 피해를 키웠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가 이달 초 표본 농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피해 상황은 심각하다. 후지 품종을 기준으로 사과의 개화 상태는 56.1% 정도가 평년 대비 ‘나쁨’으로 평가됐다. ‘비슷’은 35.8%였고 ‘좋음’은 8.1%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29.8%였던 ‘나쁨’ 비중이 올해 들어 배 가까이 치솟았다.

배와 복숭아도 마찬가지다. 개화 상태가 나쁜 배 비율은 지난해 2.3%에 그쳤지만 올해는 36.9%에 달했다. 복숭아 역시 ‘나쁨’ 비중이 지난해 6.3%에서 올해 40.6%로 뛰어올랐다. 과일 품질과 직결되는 개화 상태가 올봄 이른 무더위와 연이어 닥친 저온 현상으로 크게 나빠졌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이달 ‘농업관측정보’ 보고서에서 “올해 (주요 과일의) 개화일은 봄철 평균 기온 상승으로 전년ㆍ평년 대비 최대 7일가량 빨랐다”며 “이후 지난달 8~9일 급격한 기온 하강으로 저지대 과수원에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농촌경제연구원 표본 조사에 따르면 사과 농가 절반(50.4%) 정도가 심한 수준의 저온 피해를 입었다. 배(69%), 복숭아(57.1%) 농가 상황은 더 심각하다. 널뛰는 기온에 강풍, 황사, 꿀벌 감소 등 다른 요인까지 겹치면서 시중에 내다 팔기 어려울 만큼 모양이 이상하거나 제대로 여물지 못한 ‘불량’ 과일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3월 29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의 한 상점을 찾은 시민이 과일을 구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29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의 한 상점을 찾은 시민이 과일을 구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과 주산지 중 하나인 경북 안동 지역에선 부란병(나무줄기와 가지에 균이 번져 부풀면서 썩는 병)이 확산하면서 피해를 키웠다. 다만 봄철 이상기온으로 인한 과수 농가 피해가 대대적인 수확량 감소, 가격 상승 등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

김원태 농촌경제연구원 원예실장은 “피해 정도가 지역별로 편차가 있고, 이달부터 적과(솎아내기)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앞으로 수확량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좀 더 살펴봐야 한다”면서도 “봄철 이상기온으로 인해 올해 과일 품질은 전반적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