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벅 되거나, 좀비 된다"…동네 갑부라던 주유소 처참한 근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시민이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이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있던 한 주유소 자리(660㎡)에는 지난달 문을 연 2층짜리 스타벅스가 성업 중이었다. 대형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손님이 몰리는 이른바 ‘항아리 상권’으로 유명했던 곳이지만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다가 2020년 문을 닫았다.

이후 여러 차례 손바뀜 끝에 239억원에 팔렸다. 지금은 지상 8층짜리 빌딩이 지어졌고, 보증금 2억원에 월 임대료만 1500만원 안팎인 알짜배기 상권으로 탈바꿈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강남권은 환경 정화와 공사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주유소 자리에 새로 빌딩을 짓는 게 훨씬 돈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강남권엔 빌딩 올리지만…입지 따라 극과 극 

주유소 사업이 위기 일로다. 마진이 박해지는 데다 전기차 보급 확대 같은 위기 요인이 커지면서다.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전국의 주유소 수는 지난해 말 1만1144개로 전년 대비 234개가 줄었다. 최근 5년 새 연평균 120여 개의 주유소가 간판을 내렸다.〈그래픽 참조〉 사흘에 한 개꼴로 문을 닫은 것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주유소가 동네 갑부의 상징이라는 건 옛날 얘기”라며 “이제는 주유소 사업만으로는 돈이 안 된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52%(2019년)였다. 식당(15%)이나 도소매업(4.1%‧이상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업계 관계자는 “리터(L)당 1원이라도 싼 곳으로 손님이 몰리면서 여전히 제 살 깎아 먹기 식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전체 주유소 중 12%(1308개)에 이르는 알뜰주유소도 위협 요소다. 박동위 한국주유소협회 차장은 “이들은 입찰을 통해 기름을 공급받다 보니 일반 주유소보다 휘발유를 L당 40원가량 저렴하게 팔고 있다”며 “정부 정책 변화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그나마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는 서울 등지에선 폐업하고 빌딩을 세우거나, 세차·전기차 충전기 같은 부대시설을 설치해 살길을 찾고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 5년 동안 폐업한 서울 강남구의 주유소 12개를 전수 조사했더니 4개는 이미 새 건물로 바뀌었다. 3개는 공사 중이거나 공사 예정이었고, 2개는 오피스텔 홍보관과 주차장 등으로 영업 중이었다.

강남구 삼성중앙역 인근 오천주유소(706㎡)는 요새 철거 공사가 한창이다. 유니온약품이 이 부지를 2220억원에 사들였다. 청담동 경원주유소 부지(628㎡)도 540억원에 팔려 연구개발센터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문 닫는데 최대 5억”…‘좀비’ 된 곳도

하지만 서울이나 대도시 이외 지역에선 대책 없는 흉물로 방치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른바 ‘좀비 주유소’다. ‘살기 위해’ 휴업을 선택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평균 폐업 비용이 1억5000만원(한국주유소협회 추산)에 이르기 때문이다. 토양 오염을 정화하고 위험 시설을 철거하는데 드는 돈이다. 오염이 심각한 경우 최대 5억원까지 들어간다. 익명을 원한 재건축 업체 대표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폐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가난한 주유소 업주도 흔하다”며 “폐업 상담만 받고 휴업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휴업 주유소는 지방에 몰려 있다. 지난해 기준 전라북도에선 100개 중 6.5개가 휴업 중이었다. 최근 5년 새 강원도 내 전체 주유소 중 5.1%가 휴업했다. 대개는 고속도로 신설로 국도 이용이 급감한 곳이다. 지난 2020년 SK네트웍스로부터 전국 주유소 187개를 1조3000억원에 사들인 코람코자산신탁은 최근 지방 주유소 20여 개를 정리한 바 있다. 서울은 대신 폐업률(최근 5년 평균 3.8%)이 가장 높았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자금난으로 휴업과 영업을 반복하는 ‘한계 주유소’가 1000개에 육박한다고 추정한다.

‘최저가 셀프주유소’로 지역 맘카페에서 유명하던 국도변의 경기 양평군의 한 주유소는 지난해 휴업신고를 했지만, 깨진 콘크리트가 곳곳에 가득 쌓인 채 시건장치 조차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김수민 기자

‘최저가 셀프주유소’로 지역 맘카페에서 유명하던 국도변의 경기 양평군의 한 주유소는 지난해 휴업신고를 했지만, 깨진 콘크리트가 곳곳에 가득 쌓인 채 시건장치 조차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김수민 기자

“7년 내 전국 주유소 4분의 3이 퇴출”

앞으로도 ‘잿빛’이다. 전기차·수소차 전환은 직격탄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전기차·수소차 등이 늘면서 2040년까지 전국 주유소 8529곳이 퇴출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 주유소의 4분의 3가량은 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정부의 ‘탈정유’ 에너지 정책에 대비해 주유소의 사업 다각화와 폐업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동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토양오염 예방 같은 공익적 측면에서 폐업 지원 등 효율적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각 사마다 물류 거점화를 추진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해 주유소와 상생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