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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스트레스" 꽃 많아도 안 가…꿀벌 실종 원인 지목된 이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9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동 인근 야산에서 꿀벌 한마리가 활짝 핀 찔레꽃으로 날아들어 꿀을 따고 있다. 뉴스1

9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동 인근 야산에서 꿀벌 한마리가 활짝 핀 찔레꽃으로 날아들어 꿀을 따고 있다. 뉴스1

오는 20일은 꿀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세계 벌의 날'이다.
지난 2017년 유엔이 이날을 기념일로 정한 것은 세계적으로 벌 숫자가 줄어들면서 생태계 위기, 식량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벌이 사라지는 데 대해서는 다양한 원인이 제시되고 있는데, 최근 칠레와 아르헨티나 연구팀은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s, EMF)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전자기장이 꿀벌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꽃가루받이(수분) 활동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저널에 발표한 것이다.
전자기장은 전기장과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영역을 말하고, 전기장과 자기장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파동을 전자파라고 한다.

꿀벌은 매우 민감한 자기 수용 시스템을 갖고 있어서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거나 집으로 되돌아갈 때는 지구 전자기장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공 EMF에 의한 전자파에 노출되면 꿀벌은 방향 감각을 잃고, 집으로 돌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꿀벌 군집 붕괴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몸속 스트레스 단백질 증가

전자기장(EMF)이 꿀벌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실험. (A)꿀벌과 송전탑, 그리고 금영화(캘리포니아양귀비). (B)전류가 흐르는 송전탑과 전류가 흐르지 않는 송전탑의 전자기장. (C) 송전탑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른 전자기장의 세기(회색은 전류가 흐르지 않는 송전탑). [자료: Science Advances, 2023]

전자기장(EMF)이 꿀벌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실험. (A)꿀벌과 송전탑, 그리고 금영화(캘리포니아양귀비). (B)전류가 흐르는 송전탑과 전류가 흐르지 않는 송전탑의 전자기장. (C) 송전탑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른 전자기장의 세기(회색은 전류가 흐르지 않는 송전탑). [자료: Science Advances, 2023]

칠레 탈카대학교 생명과학연구소 통합생태학센터 연구진이 주도한 이 연구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가동 송전탑)과 전류가 흐르지 않는 송전탑(비가동 송전탑) 주변에서의 꿀벌 활동을 비교했다.

연구팀은 우선 가동 송전탑과의 거리에 따라 EMF 세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측정했다.
높이 20m 송전탑에서 12~17m 떨어진 곳의 지표면 25~30㎝ 높이에서 EMF가 가장 높았는데, 그 수치는 10μT(마이크로테슬라)정도였다.
송전탑에서 200m 떨어진 거리에서는 EMF가 거의 사라졌다.

가동 송전탑 주변에는 비가동 송전탑보다 금영화(캘리포니아양귀비, Eschscholzia californica) 꽃이 훨씬 적게 피었다는 것을 연구팀은 확인했다.

연구팀은 또 가동 송전탑 주변의 여러 곳에서 꿀벌을 채집, 꿀벌 몸속의 스트레스 관련 단백질인 HsP70의 양을 측정했다.
가동 송전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채집된 꿀벌에서 이 단백질 농도가 더 높았다.

EMF에 노출된 꿀벌이 산화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다.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서산리 양봉농가에서 이인구(60)씨가 지난 1~2월 꿀벌이 사라진 벌통을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서산리 양봉농가에서 이인구(60)씨가 지난 1~2월 꿀벌이 사라진 벌통을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연구팀은 채집한 꿀벌을 대상으로 스트레스와 면역 체계와 관련된 14개 유전자의 발현 정도를 측정했다.

전자기장에 노출된 꿀벌에서는 14개 유전자 가운데 12개 유전자의 발현이 노출이 안 된 벌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EMF가 장기 기억 형성, 이동 활동 감소, 먹이 구함에서 돌봄으로의 역할 복귀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송전탑 근처 꽃은 벌도 멀리해

송전탑 가동 여부와 꿀벌 방문. 오른쪽 가동 송전탑에는 벌이 찾는 회수가 적다. 또 송전탑이 가동하면 꽃이 적게 핀 먼 곳까지 벌이 상대적으로 자주 찾아 간다. [자료: Science Advances, 2023]

송전탑 가동 여부와 꿀벌 방문. 오른쪽 가동 송전탑에는 벌이 찾는 회수가 적다. 또 송전탑이 가동하면 꽃이 적게 핀 먼 곳까지 벌이 상대적으로 자주 찾아 간다. [자료: Science Advances, 2023]

연구팀은 가동 송전탑에 가장 가까운 꽃을 꿀벌이 찾는 빈도는 비가동 송전탑 지역의 약 3분의 1 수준으로 낮다는 것도 확인됐다.

보통은 꽃이 많은 지역일수록 벌이 더 자주 찾는 경향을 보이지만, EMF가 강한 곳은 꽃이 많아도 벌이 잘 찾지 않았다.
EMF가 꿀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워낙 큰 탓이라는 게 연구팀의 해석이다.

자가수분이 안 되는 초본인 금영화는 꿀벌이 덜 찾으면서 씨앗도 적게 생산했다.
EMF가 식물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꿀벌의 꽃가루받이 서비스가 줄어든 간접 영향 탓이라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연구팀은 "꿀벌이 EMF에 노출되면 자기 탐색, 학습, 의사 결정 메커니즘, 비행과 채집에 영향을 준다"면서 "더 나아가 주변 식물 군집에도 해로운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벌이 사라지면 농업생산 8% 감소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2023 세계 벌의 날 기자회견을 열고 벌 위협하는 치명적 농약 사용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2023 세계 벌의 날 기자회견을 열고 벌 위협하는 치명적 농약 사용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한편, 세계 곳곳에서는 살충제 중독, 침입종, 기후변화, 서식지 파편화 등 다양한 위협으로 인해 꿀벌이 감소하고 있는데, EMF도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이러한 모든 위협 요인들 사이의 상호작용(혹은 상승작용)은 꿀벌을 더욱 위협하고, 세계 식량 안보도 위협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꿀벌에 의한 꽃가루받이 서비스가 없으면 전 세계 농업 생산량이 8%가 감소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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