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와 콘크리트 포장 탓에 도시·농촌 야생벌 90% 사라져"

중앙일보

입력

12일 충북 청주의 한 양봉장에서 양봉업자가 아카시꿀을 채밀하기 위해 벌통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충북 청주의 한 양봉장에서 양봉업자가 아카시꿀을 채밀하기 위해 벌통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20년 이상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과거보다 벌이 90% 이상 줄었습니다."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인 20일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꿀벌과 야생 벌 보호 시민운동' 토론회에서 이흥식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관은 벌이 사라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야생 벌 동호회인 '벌 볼일 있는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
그는 "국내에는 5000여 종의 벌이 살고 있고, 70%가 땅에 집을 짓는데 공원을 비롯한 도시가 포장되면서 서식처가 사라지고, 먹이를 제공하는 식물인 밀원(蜜源)도 줄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2일 경북 성주군 성주읍 대황1리 한 양봉농장에서 농장주가 빈 벌통을 열어 확인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3월 2일 경북 성주군 성주읍 대황1리 한 양봉농장에서 농장주가 빈 벌통을 열어 확인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 홀에서 열린 이 날 토론회는 지난겨울 전국 양봉 농가에서 78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이 벌을 보호할 방안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겨울 벌 실종 사건에 대해 이상 기상 현상이나 응애 감염 등 다양한 원인이 제시됐으나, 아직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상태다. 농촌진흥청에서도 원인을 찾기 위해 계속 조사를 하고 있다.
이 연구관은 "지구 온난화로 개화 시기가 바뀌면서 개화 시기와 벌 활동기가 불일치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데다, 독성이 오래가는 살충제 살포 등으로 인해 농촌 지역에서도 야생 벌이 과거보다 9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20일 벌의 날을 맞아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흥식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관이 발표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20일 벌의 날을 맞아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흥식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관이 발표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경기도 양평에서 양봉하는 김일숙 더비키스 대표는 사례 발표에서 "지난겨울 양봉 농가의 벌이 사라진 것은 월동 전에 이미 약해져 있던 벌이 따뜻한 날씨에 밖으로 활동을 나갔다가 지쳐서 되돌아오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일숙 대표는 "추운 겨울에도 벌은 뭉쳐서 가슴 근육으로 진동을 만들어 열을 발산하면 21도 안팎의 온도를 유지하는데, 양봉업을 하는 사람들이 벌통 숫자를 늘리려고 무리하게 벌 집단을 나눈 탓에 벌이 약해지면서 응애 등에도 쉽게 감염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사람이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항생제나 살충제 없이도 벌을 아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한 양봉 농가의 벌통이 비어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한 양봉 농가의 벌통이 비어있다. 연합뉴스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은 주제 발표에서 "벌 실종 사건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벌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 연구원은 "지난 2006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월동하던 양봉 농가의 벌이 사라지면서 해외에서도 벌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했다"며 "시민운동 차원에서 벌 실종의 원인으로 지목된 네오니코티노이드 계통의 살충제 사용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에서는 2020년부터 온실을 제외한 실외에서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성 연구원은 "'지구의 벗' 등 시민단체에서는 벌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시민 과학(Citizen Science) 차원에서 모니터링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럽 등 시민단체에서는 밀원 식물의 종자를 나눠주고, 벌에 친화적인 정원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하는 안내문이나 야생 벌의 종을 구분할 수 있는 안내문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 벌의 활동 등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흥식 연구관은 벌을 살릴 수 있는 대책으로 "야생 벌이 살아갈 수 있는 식생을 조성하고, 꼭 필요할 때만 살충제를 살포하는 등 친환경적인 공원 관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곤충이 적이 아닌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 본관 옥상 'K-Bee' 도시 양봉장에서 벌 키우기 체험 활동을 하는 KB금융그룹 직원 가족들. 연합뉴스 [KB금융그룹 제공]

KB국민은행 본관 옥상 'K-Bee' 도시 양봉장에서 벌 키우기 체험 활동을 하는 KB금융그룹 직원 가족들. 연합뉴스 [KB금융그룹 제공]

한편, 이 자리에서 어반비즈의 박진 대표는 서울에서 진행하고 있는 도시 양봉 사업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2013년 서울에서 벌통 5개로 도시 양봉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여의도 한국스카우트연맹 건물 옥상, 동작구 상도동 숭실대 옥상 등 서울 25곳에 도시 양봉장을, 5곳에 꿀벌 체험장을 갖추고 있다고 소개했다.
꿀벌을 팔아 남은 수익으로는 꿀벌 정원과 꿀벌 숲을 조성하고 있는데, 7곳에 1만9000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