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꽃가루 옮기는 곤충·새 사라지면 …세계 경제 손실 최대 164조원

중앙일보

입력

지난 2월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한 양봉 농가에서 농민이 비어 있는 벌통을 가리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겨울 급격한 기상 변동 탓에 벌들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한 양봉 농가에서 농민이 비어 있는 벌통을 가리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겨울 급격한 기상 변동 탓에 벌들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곤충·새·박쥐 등 수분(受粉·꽃가루받이) 매개자가 세계 농식품 생산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은 연간 2350억~5770억 달러(286조~702조 원)로 추산된다.

하지만 재해나 살충제 사용 등으로 작물의 꽃가루를 옮기는 매개자가 사라지면 세계 식량 시스템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연간 최대 1350억 달러(164조 원)의 손실을 볼 정도로 세계 경제도 큰 충격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살충제로 인해 꽃가루받이 곤충 등이 사라진다면 한국도 연간 최대 44억 달러(5조 3500억 원)의 경제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됐다.

아일랜드의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과 환경청, 영국 레딩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사람과 자연(People and Nature)' 저널에 '세계화와 꽃가루 매개자: 꽃가루 매개자 감소는 세계 식량 시스템에 대한 경제적 위협'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꽃가루 매개자 의존 작물 74종 조사

아이보리코스트의 농장에서 농민들이 코코아 열매 더미 위에 앉아 있다. 코코아는 꽃가루받이를 곤충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작물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아이보리코스트의 농장에서 농민들이 코코아 열매 더미 위에 앉아 있다. 코코아는 꽃가루받이를 곤충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작물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연구팀은 논문에서 꽃가루 매개자들이 사라지는 상황을 ▶커피·코코아 같은 꽃가루받이 작물을 주요 수출 상품으로 삼고 여기에 의존도가 높은 고부채 빈곤국에서 발생했을 때 ▶재해가 빈발하는 나라에서 재해와 더불어 발생했을 때 ▶살충제 과다 살포가 발생했을 때 등 세 가지로 구분해 세계 농산물 무역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추정했다.

연구팀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2005~2014년 140개국의 무역 데이터를 활용했고, 동물이 꽃가루받이하는 74개 주요 작물의 거래 상황을 확인했다. 해당 작물이 매개자에게 얼마나 의존하는지, 생산량 변화와 가격 변동의 상관관계를 보는 가격 탄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했다.

예를 들어 ▶사과의 경우 꽃가루받이 동물 의존성이 40~90%, 가격 탄력성은 41~98% ▶대두(콩)는 의존성이 10~40%, 가격 탄력성은 41~98% ▶커피는 의존성이 10~40%, 가격탄력성은 14~53% ▶코코아는 의존성이 90~100%, 가격 탄력성은 14~53%로 간주했다.

매개자 의존성이 크다는 것은 매개자가 사라졌을 때 작물 피해가 크다는 것을, 가격 탄력성이 크다는 것은 가격이 상승할 때 수요도 많이 감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격 탄력성이 낮으면 생산량이 줄어도 수요가 별로 줄지 않기 때문에 가격 변화가 크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매개자가 사라지고 작물 생산량이 감소했을 때 각 국가에서 작물 가격 변동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추정했다.

생산량 줄고 가격 오르면 수입국도 피해

지난해 4월 6일 전남 나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시험 재배지에서 연구원들이 배나무 꽃 인공수분 작업을 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뉴스1

지난해 4월 6일 전남 나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시험 재배지에서 연구원들이 배나무 꽃 인공수분 작업을 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뉴스1

고부채 빈곤국에서 매개자가 사라지면 생산량이 줄고 가격이 오르게 된다. 가격탄력성이 높은 작물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 작물을 생산하는 빈곤국이 피해를 본다.

가격 탄력성이 낮으면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줄지 않아 작물을 수입하는 중상위권 국가에 피해가 집중된다. 전체적으로 48억~163억 달러의 순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재해로 인한 손실은 피지·토고·자메이카·필리핀 등의 국가들에서 크게 나타나게 되지만, 가격 상승으로 인해 독일·네덜란드·싱가포르·벨기에 등 재해 영향을 직접 받지 않는 고소득 국가도 경제적 피해를 보게 된다.
반면 코트디보르·가나·브라질 등은 생산량 감소와 가격 상승으로 오히려 경제적 이득을 경험하게 된다. 전체적으로는 30억 5000만~127억 4000만 달러의 순손실이 발생한다.

살충제 과다 사용으로 인한 꽃가루받이 작물의 손실은 404억~135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경제적 손실이 크다. 손실도 대부분 고소득 또는 중상위 소득 국가에 집중됐다.
중국과 일본·이탈리아·한국·말레이시아·벨기에 등 6개국이 전체 경제 손실의 80% 이상 차지했다.
이에 비해 고부가가치 곤충 꽃가루받이 작물을 넓은 지역에서 생산하는 아르헨티나·브라질·스페인·미국 등은 오히려 경제적 이득을 보게 된다.

한국, 살충제 피해 우려가 큰 나라

미국 앨라배마 들판 위를 살충제 살포 항공기가 날고 있다. 적은 양의 살충제로도 꽃가루 매개체나 수생 곤충 등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미국 앨라배마 들판 위를 살충제 살포 항공기가 날고 있다. 적은 양의 살충제로도 꽃가루 매개체나 수생 곤충 등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한국의 경우 꽃가루받이 작물 수입액이 연간 19억 달러 수준인데, 빈곤국의 꽃가루받이 작물 생산이 줄면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0.02%, 재해 위험이 큰 나라에서 재해로 작물 생산이 줄면 GDP의 0.01% 감소가 예상된다.

특히, 살충제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한국은 GDP의 0.29% 감소가 예상됐는데, 한국은 단위 면적당 살충제 사용량이 많은 편이어서 작물 수입으로 인한 손실과 더불어 국내 작물의 피해도 고려됐다.
한국은 살충제 피해로 인한 손실액 규모에서 세계 4위, GDP 감소 비율에서도 세계 4위로 평가됐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는 절대적 손실 가치보다는 꽃가루 매개자에 대한 다양한 위험 속에서 각국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고소득 국가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꽃가루 매개자를 유지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저소득 국가의 매개자 보존을 위해 기술과 재정 지원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오염·기후변화…꿀벌 사라지는 이유

프랑스 남부의 한 양봉가가 겨울이 닥치기 전에 벌집을 확인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살충제와 말벌 탓에 매년 30%의 벌집이 사라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프랑스 남부의 한 양봉가가 겨울이 닥치기 전에 벌집을 확인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살충제와 말벌 탓에 매년 30%의 벌집이 사라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편, 대표적인 꽃가루받이 매개체인 꿀벌이 사라지는 원인과 관련해 다양한 요인에 지적되고 있다.

지난달 영국 연구팀은 사이언스(Science)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서식지 파편화와 살충제, 대기오염, 기후변화 등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우선은 서식지가 파편화되면서 꿀벌은 먹이를 찾기 위해 집에서 더 먼 곳까지 이동해야 한다.
또, 살충제나 기타 화학 물질에 대한 노출이 증가한다. 살충제는 탐색·기억·학습 능력을 손상해 벌의 행동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일반적인 대기오염 물질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공기 중의 오염물질은 꽃 냄새를 감지하는 데 영향을 주고, 비행 능력을 손상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기후변화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도 상승과 이산화탄소(CO2) 농도 상승은 꽃의 숫자나 꿀 생산, 꽃가루의 단백질 함량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꿀벌의 먹이 선택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2021년 8월 3일 독일 남부 루트비히스부르크에서 꿀벌이 꽃가루를 모으기 위해 히비스쿠스(무궁화속 식물) 위에 착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1년 8월 3일 독일 남부 루트비히스부르크에서 꿀벌이 꽃가루를 모으기 위해 히비스쿠스(무궁화속 식물) 위에 착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