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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지진땐 4초만에 스톱…“후쿠시마 사고 막자” 고리원전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2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진행된 원자력안전위원회-기상청 원전 지진관측망 합동 현장점검에서 유국희 원안위원장(오른쪽 둘째)과 유희동 기상청장(맨 오른쪽)이 운전 정지 기준이 되는 자유지표면 관측소의 지진감시계측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원안위

12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진행된 원자력안전위원회-기상청 원전 지진관측망 합동 현장점검에서 유국희 원안위원장(오른쪽 둘째)과 유희동 기상청장(맨 오른쪽)이 운전 정지 기준이 되는 자유지표면 관측소의 지진감시계측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원안위

“쓰나미 경보가 발생하면 이 철제 대문을 닫아 발전소를 바닷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습니다. 워낙 무겁고 큰 문이기에 완전히 닫히는 데만 4분 30초가 걸립니다. 대문 높이만 5m이고, 해수면 기준으로는 10m 높이의 장벽이 생기는 셈입니다.”

지난 12일 부장 기장군 고리원전 발전소 입구에 들어서자 두께 1m, 무게 27t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만난 모상영 고리1발전소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속 조치로 이 문이 설치됐다”며 “10m의 쓰나미가 원전을 덮쳐도 안전하다. 해수면 상승을 고려해도 10m보다 높은 쓰나미는 없을 것으로 예측한다”고 덧붙였다.

고리원전은 한국 첫 원자력 발전소로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고리 1호기는 2015년 영구정지됐으며, 고리 2호기는 설계수명 만료에 따라 지난달 일단 가동을 멈춘 뒤 수명연장을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이날 고리원전을 찾은 건 지난 3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기상청이 지진‧기상 및 원자력 안전분야 협력체계 구축 협약을 맺은 데 이어, 관측망과 실제 대응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유국희 원안위원장, 유희동 기상청장 등 관계자들이 현장을 찾았다.

한국은 환태평양 지진대로부터 약 600㎞ 떨어진 유라시아판에 있어 대규모 지진 가능성이 작다고 알려졌었지만, 1978년 이후 지난해까지 규모 5.0 이상 지진이 10회 발생했다. 여기에 최근 동해에서 소규모 지진이 잦아지고, 국내 원전이 동남권에 몰려있어 국민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동해에서 혹여나 모를 강진이 일어나면 원전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땅이 흔들리며 원전 기반시설에 충격이 가해질 수 있고, 그다음에는 쓰나미가 몰려오며 전기 발전시설을 마비시킬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도 지진 자체의 충격보다 그 뒤 원전을 덮친 최고 15m 높이 쓰나미가 문제가 됐다. 원자로는 지진감지 뒤 자동으로 셧다운 됐지만, 쓰나미로 인해 지하에 있던 변전설비가 침수됐다. 이로 인해 냉각수 펌프 전력공급이 중단됐고, 열을 식히지 못해 결국 참사가 일어났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원자로를 안전하게 정지시키고 냉각시키는 핵심 기능에 대해 0.3그래비티(g·약 진도 7.0 규모) 지진까지 내진 보강설비를 해뒀다”며 “쓰나미를 막기 위해 방수문을 비롯해 침수 방지 설비도 보강했다”고 설명했다. 전기가 끊겨 냉각을 못 할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비상디젤발전기·이동식발전차 등 총 5개의 전력 공급원도 마련해뒀다.

지난 12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진행된 원자력안전위원회-기상청 원전 지진관측망 합동 현장점검에서 유국희 원안위원장(오른쪽 둘째)과 유희동 기상청장(왼쪽 둘째)이 고리 2호기 주제어실에 설치된 지진경보 경광등(빨간 원)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원안위

지난 12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진행된 원자력안전위원회-기상청 원전 지진관측망 합동 현장점검에서 유국희 원안위원장(오른쪽 둘째)과 유희동 기상청장(왼쪽 둘째)이 고리 2호기 주제어실에 설치된 지진경보 경광등(빨간 원)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원안위

사고를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진을 빠르고 정확하게 탐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원전과 주변엔 가속도 계측기 6대가 설치돼 있다. 운전 정지 기준이 되는 건 원자로 건물 중심에서 약 109m 떨어진 자유 지표면 관측소다. 일정 기준(지진경보 0.01g, 운전기준지진·OBE 0.1g)을 넘으면 주(主)제어실에 경보를 보낸다. 주제어실의 경광등은 지진경보를 알리는 주황색 사이렌과 OBE를 알리는 빨간색 사이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옆엔 방사능 유출 정도를 경고하는 백·청·적 경보기도 있었다.

자동 셧다운 기준인 0.2g(약 6.5 규모)의 90% 수준(0.18g)의 지진이 감지되면 원전이 자동으로 멈춘다. 고리원전 관계자는 “지진 감지 후 제어봉(핵연료 반응도 조절하는 막대)이 4초면 떨어진다”며 “자동 셧다운 시 4초면 원자로가 안전하게 멈추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응력 강화를 위해 기상청과 원안위는 원전 밀집지를 중심으로 국가 지진 관측망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원안위 지진관측소 220개(고리·월성원전 주변 150개, 한빛·한울원전 주변 70개)를 연내 국가지진관측망에 연계하는 등 현재 390개인 관측소를 2027년 851개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원전 인근의 지진 발생 관측 시간이 3.4초(현재)→1.4초(2027년)로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모상영 소장은 “지진 정보가 늦으면 원전 안전정지에 필요한 기기가 손상을 입을 수 있어 1초라도 빨리 받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국희 원안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현장시찰단 파견에 대해 “단순히 일본 측 설명만 들으러 가는 건 아닐 것”이라며 “양국 간 협의를 통해 구체적 시찰 대상과 범위가 정해지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등 해당 분야 전문가가 시찰에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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