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술 마신 뒤에 물을 마셔도 소용없다. 물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술이 더 빨리 깨지 않는다. 숙취 증상을 조금 줄이는 효과는 있다. 알코올은 이뇨제처럼 작용해서 탈수 증상을 일으킨다. 술을 마시고 나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는 이유다. 술 마신 다음 날 얼굴이 땅기는 느낌이 드는 것도 탈수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물은 인체가 섭취한 알코올을 제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알코올은 간에서 대사된다. 물은 간이 알코올을 해독하는 일을 도와줄 수 없다. 약 먹을 때 물을 많이 마신다고 해서 몸에서 약이 더 빨리 빠져나가는 경우도 드물다. 물을 마시면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약의 농도가 희석될 수는 있다. 일부 항생제, 항암제를 복용할 때 하루 4~6잔 이상 물을 마시라고 권고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소변 중에 약의 농도를 묽게 해서 약이 결정을 만드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도예가 한애규의 ‘갈증’. 물을 많이 마신다고 술이 빨리 깨진 않는다. 술은 언제나 적당히 마시는 게 좋다.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5/11/4a82fc6c-aa66-4d7d-ac2d-1c609c1d3d10.jpg)
도예가 한애규의 ‘갈증’. 물을 많이 마신다고 술이 빨리 깨진 않는다. 술은 언제나 적당히 마시는 게 좋다. [중앙포토]
과거에는 운동선수들이 약물 남용 뒤에 이뇨제를 복용하거나 물을 많이 마셔서 도핑 테스트를 피하려고 시도하는 사례도 있었다. 요즘엔 분석 기술이 좋아져서 그렇게 해도 검사에 다 걸린다. 게다가 알코올처럼 간에서 대사되는 약물은 물을 마셔도 체내에서 제거되는 데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술을 마시는 중간에 물을 마시면 덜 취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물이나 비알콜 음료를 마시면 술 마시는 양이 조금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술을 마시려는 욕구가 줄어드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도 있다. 2017년 독일 연구팀은 23명의 알코올 의존증 남성 환자를 대상으로 한쪽에는 미네랄워터 1000㎖를 마시도록 하고 다른 쪽은 물을 마시지 않도록 하여 호르몬 수치를 비교했다. 그 결과, 물을 마신 참가자들은 음주 욕구와 관련한 호르몬 수치가 줄어들고 실제로 음주에 대한 갈망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물을 마시면서 술을 마시면 나도 모르게 조금 적게 마실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술 한 잔을 마시면 물 한 잔을 마시는 전략은 술을 적게 마시는 방법으로는 나쁘지 않다.
술 마신 뒤에 빨리 깨는 방법은 없다. 커피나 카페인 음료를 마시면 술이 깨는 거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카페인은 알코올 자체의 해독에 전혀 효과가 없다. 2020년 캐나다에서 호흡을 항진시키면 알코올이 더 빠르게 제거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소규모 연구로 알아내긴 했다. 하지만 이것도 과호흡을 유도하는 기기를 사용했을 때 이야기다. 일상에서 음주 뒤에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니 선택은 단 하나다. 간이 알코올을 전부 제거하기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 몸은 정직하며 융통성이 없다. 뒷일이 걱정된다면 술을 안 마시거나 적게 마시는 수밖에 없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