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탈북 국군포로 73년만에 승소…"北, 5000만원씩 배상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전쟁 때 북한에 잡혔다가 탈북한 국군 포로 김성태 씨가 8일 오전 북한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 후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전쟁 때 북한에 잡혔다가 탈북한 국군 포로 김성태 씨가 8일 오전 북한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 후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맙습니다!”

51년간 북한에 국군포로로 끌려갔던 김성태(91)씨가 8일 서울중앙지법 법정을 나서며 외쳤다. 쓰고 있던 모자를 한 손에 쥐고 고개를 숙인 채였다. 굽은 등 위로 머리가 새하얗게 세 있었다. ‘6.25 국가유공자’ 문구가 새겨진 모자를 다시 머리에 쓴 김씨는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내디뎠다.

이날 김씨는 1950년 납북된 지 73년 만에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김씨는 2001년이 돼서야 탈북에 성공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2단독 심학식 판사는 이날 국군포로 김씨와 유영복(93)씨 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북한에 “김씨 등 3명에게 각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김씨 등은 2020년 9월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김씨 등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군으로서 전쟁 및 북한군의 포로가 돼 강제노역에 종사하거나 억류됐다”며 “피고의 행위는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그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이 명백하다”고 했다.

법원은 김씨 등 변호인의 신청에 따라 북한 측에 소장을 공시 송달한 끝에 지난달 17일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하지만 북한 측이 두 차례 변론기일에 연속으로 불출석하면서 변론이 종결됐고, 이날 선고기일이 열렸다. 당초 소송에 참여한 국군포로는 5명이었지만 소송 과정에서 세 명이 숨졌다. 공시 송달은 소송에 관한 서류를 전달하기 어려울 때 해당 서류를 법원 게시판 등에 일정 기간 게시하고 전달한 것으로 간주하는 방식을 뜻한다.

김씨는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기분을 잊지 않고 죽는 날까지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다 죽겠다”며 “(앞으로) 쓸 수 있는 금액을 다 나라에 바치려고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함께한 사단법인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은 “국가는 어떤 경우에도 적지에 있는 포로를 구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정전 70주년이 흐르도록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이 어르신들을 홀대해온 것에 대해 국가가 반성해야 할 것”이라며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여한 국군포로 김성태 씨. 연합뉴스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여한 국군포로 김성태 씨. 연합뉴스

다만 김씨 등이 실제로 북한에서 손해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에 손해배상 채권을 집행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물망초에 따르면 2020년 7월 국군포로로선 처음으로 고 한재복(사망 당시 89세)씨 등이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졌지만, 손해배상금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박 이사장은 “정부가 미리 김씨 등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그 금액에 대해 북한 등에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