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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가문·직업 빼고, 사자 갈기 같은 ‘나만의 상징’ 있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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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호 27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사자는 초원의 제왕이지만 모든 사자가 제왕이 되는 건 아니다. 수컷 사자 중 3% 정도만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이 영광스런 자리에 오르려면 두 가지가 필수다.

우선, 기존의 제왕과 싸워서 이겨야 하니 힘이나 근육과 같은 전투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자리에 오를 수는 있지만 제대로 이끌어 갈 수는 없다. 집단을 실질적으로 유지하는 암컷 사자들이 새로운 제왕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멋진 갈기가 필요하다.

바람에 휘날리는 풍성한 갈기를 말하는 걸까? 아니다. 사자들 사이에서 이건 두 번째 조건일 뿐, 이들에겐 윤기가 나는 듯한 검은 갈기가 최고다. 최상의 건강 상태로 힘이 넘칠 뿐만 아니라 경험이 쌓여 성숙하다는 징표인 까닭이다. 사자들의 세상에선 힘 못지 않게 중요한 게 갈기다.

사자만이 아니다. 적이든 우리 편이든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자리, 특히 집단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려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강력한 상징이 있어야 한다. 수컷 사슴은 누가 봐도 우람하고 멋진 뿔을 가져야 하고, 바다코끼리는 엄청난 덩치를 가져야 하며, 오랑우탄은 듬직한 덩치와 함께 넙적한 볼, 그리고 침착하면서도 빛나는 눈빛을 가져야 1인자 자격을 갖춘 것으로 여겨진다.

믿음과 희망 같은 보이지 않는 허구를 믿는 우리 인간들 역시 이런 힘을 일찌감치 깨우친 덕분에 자연에서 검증된 이런 상징들을 오래 전부터 갖다 써 왔다. 유럽인들이 지금도 흠모하는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은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전국에 자신의 두상을 설치했는데, 사자 갈기를 닮은 머리칼을 한 모습이었다.

로마 황제들 역시 이를 위해 사자를 애완용으로 길렀고, 자신들이 죽으면 자신을 태우는 불길 속에서 독수리로 변해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게끔 하려고 애썼다. 집단을 이끌려면 권력만이 아니라 권위가 필요하기에, 누구나 인정하는 이런 상징을 통해 우러르는 마음을 만들어내려 했던 것이다. 상징이란 손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어야 가능한 까닭이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왕국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들 역시 사자와 표범을 자신들의 표상으로 삼았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신 호루스는 하늘의 제왕인 매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용이 그 역할을 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도 이런 상징이 있다. 장군의 투구 위에 삼지창 같은 뾰족한 모형이 있는데, 이건 단순한 창이 아니다. 매가 날개를 쫙 펼치며 공격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자연의 동물로부터 문명과는 거리가 먼 오지 부족들까지 상징물로 자신을 나타내는 이유가 뭘까?

시각을 가진 생명체에게 이미지는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인데, 이런 이미지 중에서도 가장 농축된 의미를 담은 게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인류학자 빅터 터너는 “상징은 문화의 정수”라고 했는데,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이나 대중을 상대하는 정치인들이 이걸 생명처럼 여기는 게 그래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라고 하면 그가 오로지 혁명의 힘으로 집권한 걸로 알지만, 사실은 상징의 힘이 컸다. 1959년, 카스트로가 광장에서 연설을 할 때였다. 연설 중간에 흰 비둘기를 날려 보냈는데, 무슨 일인지 날려보낸 비둘기가 돌아와 그의 어깨에 앉았다. 세상에,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그의 어깨에 앉다니! 비둘기가 적임자를 알아봤다! 사람들은 이렇게 믿었다. 카스트로에겐 ‘하늘이 내린’ 축복이 따로 없었다. 상징이 그 사람의 정체성과 동일시되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누군가를 무너뜨리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그 사람을 상징하는 걸 공격하고 망가뜨리는 것도 이래서다. 예수에게 십자가를 지게 한 게 그렇고, 사람들이 독재자에게 항거할 때 먼저 그의 초상화나 동상을 불태우고 무너뜨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헤어진 연인을 잊으려 할 때, 그를 상징하는 것들을 치워버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옷이나 특별한 물건으로 자신을 나타내던 신분제가 무너지고 개인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세상이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넘쳐나는 것에는 이런 오래된 배경이 있다. 시쳇말로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니 이걸 상징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상징은 넘쳐날 정도로 많은데 종류가 참 빈약하다. 부와 지위를 향한 것들 일색이다. 비싼 곳에 가서 식사하고, 명품 옷과 장신구, 고급자동차로 자신을 나타내거나, 지위가 가진 힘을 휘두르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외에 다른 걸 찾기 힘들다.

사자의 갈기가 그렇듯, 상징이란 자신이 쌓고 만든 고유한 정체성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표현이어야 하고 품격 역시 여기서 나오는 건데, 이걸 돈과 힘으로 해결하려 한다. 과시가 아닌 자신 만의 매력 같은 상징이 그렇게 없을까. 상징물은 차고 넘치지만 진짜는 드문, 가히 상징의 빈곤 시대라 할 만하다. 한 번쯤 생각해보자. 명함 빼고, 명품 빼고, 고급 자동차 빼고, 내 힘으로 이룬 게 아닌 집안 배경 빼고, 한때 공부 열심히 해 나온 출신 대학을 뺐을 때, 나를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있기는 있을까.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araseo11@naver.com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등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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