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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새 실종 사건’ 엉뚱한 곳서 풀려, 보이는 게 전부 아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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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15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괌에서 새가 실종된 사건

괌에서 새가 실종된 사건

우리가 잘 아는 태평양의 섬 괌에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숲에 가득하던 새 소리들이 갈수록 줄어들더니, 1983년쯤 되자 새를 보기가 힘들어질 정도로 숲이 조용해졌다. 숲을 훼손한 것도 아닌데 그 많은 새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살충제 남용 때문이었을까? 그런 흔적은 없었다. 2차 대전이 끝났는데도 항복하지 않고 몇 십 년 동안 필리핀 밀림에서 살았던 어떤 일본군처럼 그런 부대가 혹시 살고 있어서?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두 가지. 사람에겐 해가 없는 조류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이거나 고양이나 쥐 같은 외래 포식자들 때문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정밀 조사를 했는데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이 섬이 포함된 마리아나 제도 남쪽에서 시작된 새들의 실종, 아니 멸종은 점점 북쪽으로 퍼졌다.

문제의 심각성은 단순히 새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새들은 이 섬에서 나무 열매를 먹고 다른 곳에 씨앗을 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사라지면 결국 이 섬 생태계의 기반을 이루는 숲 역시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넓은 태평양에 외롭게 떠 있는 섬에 숲이 사라진다면? 사람 역시 살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서 풀렸다. 미국 정부의 조사 의뢰를 받은 줄리 새비지라는 동물학자가 어느 날 실험실로 출근해 보니 연구를 위해 잡아 둔 새 세 마리가 실종됐고 한 마리는 사체로 발견됐다. 범인은 에어컨 환기구를 통해 들어온 갈색나무뱀이었다. 능력이란 이런 우연을 흘려보내지 않고 단서를 찾아내는 것. 직감이 발동한 새비지는 이 새로운 ‘용의자’에 초점을 맞춘 끝에 결국 이들이 침묵의 숲을 만들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데이비드 쾀멘, 『도도의 노래』).

어느 생태계든 포식자는 피식자를 멸종시키지 않는다. 눈에 보인다고 다 먹어버리면 결국 자신들도 같은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존 상식’은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와 보이지 않는 역학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한참 아래쪽에 위치한 뉴기니 섬에서 우연히 이곳으로 온 이 뱀들에게 괌은 이런 게 필요 없을 것 같은, 천국 같은 곳이었다. 포식자는 없고 먹이는 널려 있었다. 이 섬의 새들 역시 이전까지 이런 포식자를 만나보지 못했기에 방어책이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이 뱀들은 밤에만 활동하는 데다 사람을 무는 일이 거의 없어 심각해지기 전까지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몇 년 후 태평양 너머 하와이에서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1980년대 말, 하와이 사람들은 밤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개구리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개구리가 내는 소리가 좀 시끄럽긴 하지만 푸에리토리코에서 건너온 이 코키개구리들은 차원이 달랐다. 몸길이가 3㎝ 정도에 불과한 작은 녀석들이 무려 80~90㏈에 이르는 목청을 갖고 있었다. 지하철이 역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80㏈이고, 기계로 가득 찬 공장 안이 90㏈인데 이런 소리를 밤새 들으면 어떨까? 이들보다 수백 배나 큰 사람에게 이 정도이니 생태계에 주는 피해는 얼마나 클까 싶은 정부가 나섰고 전쟁을 벌이듯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한낱 개구리이니 단박에 조용한 밤을 만들었을까.

반대였다. 이미 생태계에 적응한 녀석들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더 놀라운 건, 이들이 그토록 고성방가를 하는데도 생태계에는 어떤 부정적인 영향도 끼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만 견디기 힘든 밤을 선사했을 뿐 해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새들의 개체 수가 늘어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 먹잇감이 하나 더 생겨서 말이다.

우리는 오랜 진화 기간을 통해 갑자기, 그리고 크게 닥쳐오는 것일수록 위험하다는 것을 뿌리 깊게 경험했던 탓에 지금도 이런 현상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반면, 느리게 조금씩 오는 건 위기라고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기후 변화를 아무리 외쳐도 귓등으로 듣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하지만 이런 사례에서 보듯 천천히 보이지 않게 온다고 위기가 아닌 것도 아니고, 요란하게 온다고 위기인 것도 아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위기는 물론 기회 역시 진짜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있을 때가 많다.

얼마 전 국립생태원이 주관하는 ‘외래 포유류 위해성 평가’라는 워크숍에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뉴트리아나 비버처럼 어느 순간 점점 늘어가는 외래 포유류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현장 연구자들이 오랜 시간 관찰한 결과를 토론하는 자리였다. 말이 현장 연구지 숨바꼭질하듯 이들을 일일이 추적, 실태를 파악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더하여 듣는 내내 드는 생각이 있었다. 상황 너머를 보는 눈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이렇듯 보이지 않는 노력의 축적에서 생기고, 어딘가엔 벌써 왔을, 그러나 느리게 조금씩 오기에 잘 느끼지 못하는 변화나 미래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역시 평소에 관심 있게 잘 지켜보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이 워크숍을 이끈 전태수 부산대 명예교수의 말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기반 정보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대응력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araseo11@naver.com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등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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