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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렐라의 변신…‘하얀 석유’ 뽑는 친환경 기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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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고석현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47〉 그린미네랄 정광환 대표 

그린미네랄 창업자 정광환 서강대 교수가 폐액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의 핵심 물질인 클로렐라를 소개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그린미네랄 창업자 정광환 서강대 교수가 폐액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의 핵심 물질인 클로렐라를 소개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리튬 사업은 ‘돈 뽑아내는 면허’를 따는 것과 같다”(2022년 7월), “사진 공유 앱 만들 시간에 제발 리튬 좀 만들어달라”(지난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의 말이다. 1817년 발견된 리튬은 유리의 녹는 점을 낮춰주는 특성 때문에 유리공업에서 주로 쓰였다.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차 세계대전 당시 삼중수소를 활용한 수소폭탄 제조 기술이 개발되면서다.

1990년대 들어서는 전자제품의 휴대성이 중시되면서 고용량이면서도 가벼운 리튬이온배터리의 몸값이 높아졌다. 그 덕분에 ‘21세기 하얀 석유’란 별명이 붙었다. 리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건 전기자동차 시장이 활성화하면서다.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로 쓰인다. ‘전기차 대부’ 머스크가 리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미세조류 ‘생광물화’ 성질 이용
처치 곤란 폐액서 리튬 뽑아내
친환경 바이오 기술 활용한 추출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에서 주목

‘클로렐라’로 리튬 뽑는 친환경 기술

그린미네랄을 창업한 정광환 서강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세계 최초로 미세조류 클로렐라를 활용해 리튬 폐액과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 대표는 “지구 온도 상승으로 ‘지구의 위기’라지만 사실은 지구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의 위기”라며 탄소 저감 등 친환경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기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보니 폐배터리에서 원료를 회수해 재활용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화학처리 등을 통해 흑연·망간·니켈 등을 분리해내는 것이다. 지구에 매장된 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기용매를 통해 리튬을 추출하는 건 환경오염 위험도 크고 경제성이 높지 않아 상업화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연못에 떠 있는 초록색 물질이 클로렐라에요. 건강기능식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미세조류를 연구하며 클로렐라가 리튬 등 금속 이온을 탄산염으로 만들어 침전시키는 특징을 발견했어요. 조개가 껍데기를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조개 몸속에 칼슘이 들어와 이산화탄소와 만나면 탄산칼슘이 돼 딱딱한 물질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처럼 클로렐라가 리튬과 만나 생광물화(생체가 광물을 형성하는 것) 반응을 일으키는 거죠.”

그린미네랄은 클로렐라의 유전자를 변형해 생장성을 키우고, 생광물화 성능을 높였다. 정 대표는 “클로렐라는 원래 빛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클 수 있지만, 산업화를 위해선 생장성을 높이는 게 관건이었다”며 “유전자 형질을 바꿔 클로렐라 생장 기간을 21일에서 10일로 줄이면서도 생산량은 2배가량 높아지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의 전문 분야는 눈의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단백질 중 하나인 ‘로돕신’이다. 정 대표는 “이스라엘 사해에 주로 나던 로돕신이 미세조류에도 있다는 걸 알게 돼 연구를 확장했다”며 “이어 미세조류 유전자 변형을 통해 바이오디젤 생산 연구에 도전했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는 미세조류로 방사선을 제거하는 연구까지 범위를 넓혔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전 세계 500여개의 미세조류를 다루게 됐다”며 “클로렐라의 가능성을 본 것도 이때”라고 덧붙였다.

바닷물의 리튬 농도는 0.17ppm이다. ‘자원의 보고 바다에서 리튬을 뽑아낼 순 없을까’하는 생각에 2015년 클로렐라 유전자 조작을 통해 바닷물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여기서 실패를 맛봤다. 정 대표는 “민물에 사는 클로렐라를 바닷물에 적응시키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바닷물 속 리튬 농도가 너무 낮아서 결국 기술 개발엔 실패했다”고 돌이켰다.

전기차 수요 폭증…리튬 몸값 높아져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다. 전기차가 주목받으며 갑자기 리튬의 가격이 확 뛰기 시작한 것.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2021년 1월 초 ㎏당 58.38위안(약 1만원)이던 중국산 탄산리튬 가격은 같은 해 12월 217.41위안(약 4만원), 지난해 3월 469.33위안(약 9만원)까지 뛰었다. 지난해 11월 571.45위안(약 11만원) 최고점을 찍은 뒤 지난달 171.29위안(약 3만원)까지 떨어졌다. 정 대표는 “리튬이 이렇게 유망할지 몰랐다”며 “기초연구는 유망한 분야가 뭔지 모른다. 사람들이 안 하는 연구를 찾다 보니 로돕신과 만났고, 미세조류→클로렐라→리튬으로 범위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팬데믹 때 해외 학회가 중단되며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생겼어요. 이때 클로렐라를 활용한 리튬 추출 기술을 본격화할 수 있었죠. 교내에 이호석 생명과학과 교수가 강의하는 ‘바이오텍의 상업화 종합설계’라는 과목이 있어요. 바이오 기술의 사업화 가능성을 학생들이 평가하는 수업이에요. 학생들은 제 기술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이호석 교수는 “교수창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창업자가 교수라는 점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며 “비즈니스 모델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학생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성을 제시했고 마켓 서치 결과도 훌륭했다. 미국에서 창업했던 경험을 살려 정 대표에게 창업경진대회 출전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포스코그룹의 스타트업 육성프로그램인 포스코IMP(아이디어 마켓 플레이스) 대상으로 선정돼 2021년 6월 그린미네랄을 창업했다. 이때 이 교수를 아예 그린미네랄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영입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전 세계에 약 9800만t의 리튬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한다. 보통 아르헨티나·호주·칠레 등의 광산에서 채굴되는데, 가공 과정에 많은 인력이 필요한 데다 환경 파괴를 야기해 대부분의 가공이 중국에서 이뤄진다. 경제적이면서도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리튬 추출 기술이 중요한 이유다. 그린미네랄의 기술은 광석에서 리튬을 뽑아낸 뒤 남은 리튬 폐액에서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리튬을 뽑아낼 수 있는데, 수율이 70%에 이른다.

정 대표는 “전기차 폐배터리에 보통 28㎏의 리튬이 함유돼있는데, 그중 20㎏가량을 회수할 수 있다”며 “폐배터리에서 코발트·니켈·망간을 먼저 추출하면 2000~3000ppm 수준으로 낮은 농도의 리튬 폐액 10t(수용액 1만L)이 나오고, 여기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데 클로렐라 2㎏(수용액 100L)이 필요하다. 클로렐라 비용은 유기용매보다도 저렴하다”고 강조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전 세계 전기차 폐배터리 발생량이 용량 기준으로 2025년 44기가와트시(GWh)에서 2040년 3339GWh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전 세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금액 기준으로 2040년 1741억2000만달러(약 20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린미네랄에 투자한 정원식 디쓰리쥬빌리 투자심사역은 “물리적 필터나 황산 등을 쓰는 기존의 리튬 추출방식보다 경제성과 친환경성이 높다”며 “클로렐라를 배양하고, 리튬을 탄산리튬으로 만드는 생광물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효과가 있어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술 있으면 창업…컨베이어 시스템을”

정 대표는 “창업하는 과정이 행운이었다”고 말하지만,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는 “처음엔 기술만 좋으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멋도 모르고 창업을 하다 보니 경영·법무·회계·행정 등 접해보지 못했던 업무가 밀려와 결국 창업 직후 대상포진에 걸렸다”며 “두 달간 병실에 누워 ‘기술은 내가 해도 나머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경영 업무 외주를 결정했다. 덕분에 창업 초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는 이 회사에 기회가 됐다. 정 대표는 “시리즈A 유치 땐 모집이 잘되지 않아 해외로 나가려고 고민하기도 했다”며 “우연한 기회에 CES에 출품하게 됐는데,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기술의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친환경 리튬 추출 기술이라 해외 투자사에서 먼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배 창업자로 ‘멘토’ 역할을 해 준 이호석 교수의 역할도 컸다고 한다. 창업 후 스텝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분자신경생물학 전문가인 이 교수는 2013년 미국에서 신경 센서 기술을 기반으로 ‘리얼센스테크놀로지’라는 스타트업을 공동 창업했던 경험이 있다. 정 교수는 국내 창업 활성화를 위해선 ‘컨베이어 창업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서는 투자·법무·경영·법무·재무 등 다양한 분야를 창업자가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듯 뛰어야 해요. 대표이사 월급은 어떻게 지급하고 상장 준비는 어떻게 하고…, 교수들은 잘 모르거든요.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해요. 미국에선 창업자가 기술만 가져가면 창업 바우처를 제공해 컨베이어 벨트에서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단계별로 도와주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요. 혼자 창업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주면 훌륭한 스타트업들이 많이 자라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