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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낳고 MVP까지 딴 농구전설…평창銀 김보름이 궁금했던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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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스포츠계 저출산, 엄마선수가 없다 ③·〈끝〉

여자농구 ‘엄마 지도자’ 전주원 우리은행 코치(오른쪽)와 미혼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김보름. 전주원 코치는 임신한 뒤 은퇴했다가 2년 만에 코트에 복귀해 우승을 차지했다. 김종호 기자

여자농구 ‘엄마 지도자’ 전주원 우리은행 코치(오른쪽)와 미혼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김보름. 전주원 코치는 임신한 뒤 은퇴했다가 2년 만에 코트에 복귀해 우승을 차지했다. 김종호 기자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 저출산으로 위기를 맞은 분야는 한두 개가 아니다. 스포츠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특히 선수 지원자를 못 구하는 비인기 종목의 경우 경쟁력은커녕 종목 존폐를 걱정하는 처지다.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위해 결혼한다”는 남자 선수와 달리 여자 선수의 결혼·출산 비율은 일반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중앙일보는 ‘미혼 선수’ 김보름(30·스피드스케이팅)과 ‘엄마 지도자’ 전주원(51·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코치)을 만나 여자 선수의 고충을 들어봤다. 전주원은 임신을 이유로 은퇴했다가 2년 만에 코트에 복귀해 우승하고 MVP까지 수상했다. 현재는 지도자로 활동 중인 입지전적 인물이다.

신한은행 선수 시절 전주원. 중앙포토

신한은행 선수 시절 전주원. 중앙포토

전 코치는 “2004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올림픽 진출 티켓을 딴 뒤 테스트를 해봤더니 임신이었다. 당시 33세로 미련 없이 은퇴했고, 딸을 낳은 뒤 코치를 맡았다. 선수로 복귀할 마음은 없었는데 소속팀의 설득 끝에 코트에 돌아왔고, 결국 마흔 살에 은퇴했다”고 말했다.

지난 달 전국체전 여자 일반부 1500m에 출전한 김보름 . 뉴시스

지난 달 전국체전 여자 일반부 1500m에 출전한 김보름 . 뉴시스

그러자 2018년 평창올림픽 매스스타트 은메달리스트 김보름은 “전 코치님 이야기를 들으니 신기할 뿐이다. 스피드스케이팅은 체력이 중요한 종목이라 20대 중반이면 거의 그만 둔다. 그래서 내가 최고참이다. 그런데 출산하면 체력이 떨어지지 않느냐”고 물었다. 전 코치는 “산후조리를 FM(야전교범)대로 했다.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100일간 양말도 안 벗고 스트레칭을 하니 열흘 만에 15㎏이 빠졌다. 근육량이 떨어졌지만, 노하우가 있다 보니 몸이 빨리 돌아왔다. 시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주신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여자농구 ‘엄마 지도자’ 전주원 우리은행 코치(오른쪽)와 미혼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김보름. 김종호 기자

여자농구 ‘엄마 지도자’ 전주원 우리은행 코치(오른쪽)와 미혼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김보름. 김종호 기자

김보름이 “언젠가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고, 나이가 들어도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데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슬플 것 같다. 지도자로 나설 생각도 있지만, 결혼 뒤에도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도자로서 10차례 우승을 차지한 전 코치는 “딸이 어릴 때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 가이드북에 나온 사진을 보고 울었다. ‘집에서 애나 봐’란 소릴 들을까 봐 두려웠다. 코트에서 더욱 열심히 한 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름 선수도 두려워하지 말고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결혼과 출산과 이후에도 열심히 활동한다면 후배들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일보가 스포츠계 저출산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선수는 “암묵적으로 ‘계약 기간에 임신은 금지’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런 팀이 수두룩할 것”이라고 전했다. 격렬한 종목의 한 기혼 선수는 “잦은 장기 합숙 탓에 아이가 안 생겨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직장 운동경기부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90일의 출산휴가와 최대 1년 6개월의 육아 휴직을 유급으로 보장한다. 다만 지도자와 해당팀의 양해가 불가피하다. 강원도청 소속 김보름은 “만약 나도 임신한다면 팀에서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를 원하는 선수를 배려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여자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전 코치는 “만약 선수가 출산 후 복귀 의지가 있다면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프로 스포츠는 결국 회사(모기업, 구단)의 사정이 중요한 게 현실이다. 육아 휴직을 보장하기도 쉽지 않다. 운동선수만을 위한 특혜가 있다면 일반인들이 역차별을 받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여성체육인 125명 중 절반 이상은 출산휴가와 육아 휴직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선 ‘임신 기간에 훈련 시간 관리를 할 수 있다면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 268명의 응답자 중 62%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민인권위원회와 권익위원회의 권고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부터 국민체육진흥공단 힌국스포츠과학원과 출산 이후 운동법, 복귀 과정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박수현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여성 선수 중 78%가 육아 문제가 해결된다면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돌봄 운영하는 LPGA, 5000달러 육아수당 주는 WNBA

테니스 선수 세리나 윌리엄스. AFP=연합뉴스

테니스 선수 세리나 윌리엄스. AFP=연합뉴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는 모성 보호를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모범 케이스다. 1993년부터 대회 기간에는 아이 돌봄 시스템을 운영한다. 자격증을 가진 전문 돌보미와 자원봉사자가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아이를 돌본다. 2019년엔 출전권을 보장하는 출산 휴직 기간을 2년으로 늘렸다. 이 덕분에 줄리 잉크스터, 스테이시 루이스 등은 출산 후 돌아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도 최근 36개월간 출산휴가를 낼 수 있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JLPGA 투어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맞게 대응하는 게 필수적인 시대에 선수들이 쉽게 출산 휴가를 쓸 수 있게 하는 목적”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테니스 메이저 대회를 23차례 제패한 세리나 윌리엄스(42·미국)는 출산으로 1년간 코트를 떠나있던 사이 세계랭킹이 1위에서 491위까지 추락했다. 그러자 여자프로테니스(WTA)는 출산으로 1년 이상 투어를 뛰지 못한 선수를 위해 개선책을 내놨다. 출산 후 3년간 12개 대회에는 출산 전 랭킹인 ‘스페셜 랭킹’을 적용하기로 했다.

미국여자프로농구(WNBA)는 출산휴가 시 급여를 100% 지불하고, 5000달러의 육아 수당을 지급한다. 불임이나 대리모 출산 시에도 지원금 6만 달러(약 7000만원)를 준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선수들도 2년간 출산 휴가를 쓸 수 있지만, 규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편이다. 신청 기한을 넘겨 시드를 유지하지 못한 선수도 있었다. 여자프로농구와 프로배구의 경우 출산을 이유로 선수 등록을 포기하면 연봉을 받을 수 없다. 재계약도 불투명하다.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맺으면서 유급휴가를 보장받은 여자배구 정대영의 경우는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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