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00억씩 쥐어 준다는데…"좀비대학 쏟아질 것" 지방대 걱정 왜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7월 7일 오후 손팻말을 든 지방대학 총장들이 당시 박순애 교육부 장관과 반도체 학과 관련 간담회를 하기 위해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들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이우종 지역대학총장협의회장, 박맹수 전북지역 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7일 오후 손팻말을 든 지방대학 총장들이 당시 박순애 교육부 장관과 반도체 학과 관련 간담회를 하기 위해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들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이우종 지역대학총장협의회장, 박맹수 전북지역 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이다. 연합뉴스

‘지방대학 시대’를 국정과제로 내건 정부가 대규모 지방대 재정 지원과 규제 완화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대학가에서는 “소규모 사립대는 다 죽는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대 정책의 진짜 목표가 강도 높은 ‘지방대 솎아내기’란 지적도 나온다.

지방대 70%가 사립대 “우릴 위한 정책은 없다”

최근 대학가 안팎에서는 정부의 규제 완화, 재정 지원 정책으로 지방대 구조조정이 더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지원이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이뤄지면서 지방대 중에도 대형 대학이나 국립대는 살아남겠지만 소규모 대학, 사립대는 낙오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지방대 130곳 중 92곳(70.8%)가 사립대다. 전남의 한 사립대 교수는 “최근 발표되는 지방대 지원책이 대부분 국립대, 특히 규모가 큰 거점국립대를 향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교육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첨단학과 정원 확대 계획에서도 지방 사립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학과 정원을 늘려줬는데, 수혜 대상인 지방대 12곳 중 10곳이 국립대다. 사립대는 연세대 원주캠퍼스, 울산대 2곳에 그쳤다. 지방 사립대 사이에서는 “수도권 쏠림을 걱정하기 전에 지역 국립대 쏠림부터 걱정할 처지”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지방대는 신청한 대학 수 자체가 적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방 사립대들은 “신청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고 했다. 경북의 한 사립대 공대 교수는 “교원 확보나 실험·실습 기자재 보유 여건 등이 심사 기준이었는데, 교원도 실험 장비도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 신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지방대 30곳에 학교당 1000억원을 주는 ‘글로컬대학’ 사업도 지방 사립대엔 희망보다 두려움의 대상이다. 전남 한 사립대 관계자는 “이 사업에 선정 못 되면 지역에서 도태되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걱정이 더 크다”고 했다.

글로컬대학은 지자체와 협력하는 대학을 선정할 계획이다. 때문에 지역에서는 시·도지사가 규모 있는 국립대를 글로컬대학으로 밀어주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나온다. 전국교수연대회의는 성명서를 내고 “극소수 대학만 남기고 전국 대다수 대학을 존폐 위기로 내모는 ‘시장 만능주의’ 대학 구조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했다.

역대 정부 대학 구조조정, 지방 사립대 정원 감축에 집중

역대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도 결과적으로 지방 대학이 타깃이 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본격화한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 평가를 재정 지원과 연계해 하위 대학의 정원 감축을 강제하는 식이었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2013~2018년 대학 구조조정으로 4년제대 정원이 2만8000여명 줄었는데, 그 중 1만9300여명이 지방 사립대 정원이다. 지방 사립대 정원이 대폭 줄면서 등록금 수입이 줄어든 지방대는 생존하기 더 어려워졌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선정하고 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기는 방식을 도입했지만 수도권과 지방 격차는 여전했다. 수도권 대학은 1953명을 감축한 반면 지방에선 1만4244명을 줄였다. 학생 수까지 급감하면서 재정난에 허덕이는 지방대 악순환은 계속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내년도 수능 응시생이 역대 최저인 41만명 내외로 추정되는 만큼, 소규모 지방 사립대의 정원 미달률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지방 사립대의 신입생 충원율은 93.1%다. 수도권 사립대 신입생 충원율(99.1%), 국·공립대 신입생 충원율(98.5%)보다 5%포인트 이상 낮다. 전남의 한 대학교수는 “일단 ‘살고 보자’는 심정으로 경비 감축에만 올인하는 ‘좀비 대학’이 늘어날 수 있다”며 “고스란히 피해는 학생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했다.

지역 경제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강릉 대학생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자료(2019년)에 따르면, 대학생 소비 활동으로 인한 지역 고용창출 규모가 약 3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 측은 “2018년 대비 전국 대학생 입학 정원이 2023년까지 8만3000명 감소한다고 가정하면, 강릉 소득은 약 220억원, 고용은 약 730명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정원 미달 지방 사립대 더 늘어나나…“지역 강소대학 키워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가운데)이 1일 오전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광주·전남 지역 대학 총장·지자체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가운데)이 1일 오전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광주·전남 지역 대학 총장·지자체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지방 사립대를 전부 살려야 한다는 데는 교육 전문가들도 동의하지 않는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인구 감소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밀어붙이기 때문에 지방대는 이미 과잉 상태”라며 “이제 그 후유증이 나타나는 중이라 어느 정도의 정리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장승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도 “1995년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허가해주는 ‘대학설립준칙주의’ 이후 지방대가 우후죽순 생겨났다”며 “지방 사립대 중에서도 비리사학, 부실대학을 제외하고 회계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약속하는 사립대에 한해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발전 가능성이 있는 지방 사립대는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희규 신라대 교수는 “한계대학은 별도의 출구를 만들어줘야 하지만, 나머지 지방의 소규모 사립대는 강소대학 형태로 육성해야 지방 균형 발전과 연계될 수 있다”며 “소수의 지방대만 육성하는 정책이 아니라 지역 사립대들이 유기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 제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송경원 정의당 교육정책위원은 “지방 사립대도 지금까지 우리나라 고등교육을 책임지던 중요 축 중 하나였다”며 “소규모 지방 사립대도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되, 그들에게 정부가 대학 운영의 투명성을 더 요구하는 방향으로 지방 교육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일 ‘광주·전남지역 대학 총장 및 지자체장 간담회’에서 “글로컬대학 사업이 대학 30곳만 집중 지원한다는 오해가 있던 것 같은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 프로젝트는 지역대학 모두가 같이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려는 것으로, 선정 안 된 대학 지원서도 꼼꼼히 살펴 규제를 풀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풀려고 한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