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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고온 뒤 이것 치명타…과수냉해 피해 축구장 7000개 육박

중앙일보

입력

25일 전북 고창군의 한 배 농장에서 배꽃이 이상저온으로 인해 수정이 안 된 채로 말라 죽었다. 고창배영농조합

25일 전북 고창군의 한 배 농장에서 배꽃이 이상저온으로 인해 수정이 안 된 채로 말라 죽었다. 고창배영농조합

“저희 배 농장은 지금 피해 수준이 95%로 엄청 심각합니다. 아무런 방법도 없고 지금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요.”

전북 고창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이양수(65)씨는 26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올해 배 농사를 망쳤다며 한숨을 쉬었다.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포근한 날씨가 영하권의 꽃샘추위로 돌변하면서 대규모 냉해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열매를 맺어야 할 배꽃은 대부분 수정도 못 한 채로 얼어 죽었다.

고창군에 따르면 지역 내 과수 착과율은 20~30% 수준에 그친다. 이 씨는 “예년보다 개화가 일주일 정도 당겨졌는데 최근에 온도가 크게 떨어지면서 피해가 상상을 못 할 정도로 커졌다”고 했다. 실제로 27일 고창의 아침 최저기온은 0.6도로 평년(8도)보다 7도 이상 낮았다.

축구장 7000개 과수 냉해 피해, 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올봄 이상저온으로 인한 농산물 냉해 피해는 전국적으로도 심각한 수준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5일까지 신고된 농작물 이상저온 피해 면적은 4876ha(헥타르)로 축구장 7000개에 육박한다. 특히 사과와 배, 복숭아 등 과수가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이렇게 농작물 냉해 피해가 나타나는 건 봄철 평균 기온이 오르는 동시에 기온의 변동폭까지 커졌기 때문이다. 올해도 이상고온과 이상저온 현상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농작물의 생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전국의 평균 기온은 9.4도로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따뜻한 초봄을 보냈지만, 이달 들어 아침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등 전국 곳곳에 이상저온 현상이 덮쳤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3월에는 고온 현상이 두드러졌지만, 4월 들어 북쪽에서 찬 공기가 주기적으로 내려오면서 꽃샘추위가 찾아왔다”며 “온난화로 인해서 생육 시기가 빨라진 식물들은 평년과 같은 꽃샘추위에도 타격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농작물 취약 시기와 서리 맞물려”

26일 전북 무주군 덕유산국립공원 내 중봉 능선에 핀 진달래꽃에 상고대가 덮여있다. 이날 아침기온이 영하 3.3도로 떨어지면서 향적봉과 중봉 주능선에 3cm가량의 상고대가 생성됐다.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

26일 전북 무주군 덕유산국립공원 내 중봉 능선에 핀 진달래꽃에 상고대가 덮여있다. 이날 아침기온이 영하 3.3도로 떨어지면서 향적봉과 중봉 주능선에 3cm가량의 상고대가 생성됐다.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

기온의 변동폭이 커지는 건 온난화와 더불어 기후 변화의 특징 중 하나다.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폭염과 한파 등의 극한 기상도 잦아진다는 뜻이다. 북극의 이상고온 현상으로 제트 기류가 약해져 북극의 찬 공기가 한반도로 내려왔고, 올겨울 극심한 한파가 나타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기후 변화의 이 두 가지 특성이 맞물리면서 농작물의 피해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아열대화로 인해 농작물의 재배지가 점점 북상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이상저온 현상은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질 때 발생하는 서리(대기 중의 수증기가 지상의 물체 표면에 얼어붙은 것)도 봄철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는 주범 중 하나다. 국립기상과학원 등 공동 연구팀이 21세기 한국의 서리 발생일을 분석한 결과, 마지막 서리일은 해마다 0.5일씩 늦춰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서울의 4월 평균 서리일 수는 3일로 평년(1991~2020년)의 0.7일보다 4배 이상 늘었다. 연구팀은 “기후 온난화는 농작물의 봄철 발아기 및 개화기를 앞당기고, 해당 시기는 서리 등에 의한 농작물이 취약한 구간”이라며 “봄철 농작물 취약구간 시기가 당겨지고 끝서리일 시기가 늦춰짐에 따라 이들 기간이 맞물려 점점 서리 재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기상학자들은 이 추세대로라면 기후 예측이 점점 불가능해지는 등 기후 이탈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농업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대준 국가농림기상센터 박사는 “과수는 개화하게 되면 추위를 버티는 힘이 확 줄어들어 기온이 영하로 가면 무조건 피해가 발생한다”며 “앞으로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온 변동폭이 커지는 변화가 계속되면 국내 재배 면적은 지속해서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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