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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악의 축’ 마약과의 전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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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희근 경찰청장

윤희근 경찰청장

싸우고 뿌리 뽑아야 할 상대가 아주 크고 위협적이다. 치명적인 독소를 무자비하게 뿜어대며 사회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존재, 바로 마약이다. 지금 마약은 정부와 수사기관이 이제껏 선언해왔던 비상한 각오를 무색하게 할 만큼 하루가 다르게 악성으로 진화하고 있다.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발생한 마약음료 협박 사건은 대낮에 대도시 대로에서 어린 생명을 대상으로 태연하게 벌어졌다는 범죄 행태만으로도 큰 공포심을 안겨줬다. 이런 마약과 보이스피싱이 결합한 신종 범죄는 마약이 일상으로 퍼졌을 때 우리 사회를 얼마나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마약 범죄는 어둠의 세계에서 마피아 같은 악명 높은 범죄 조직의 자금줄로 이용되는 수준을 뛰어넘었다. 해외에서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 암 환자들에게만 사용되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이 불법으로 유통되는 지경이다. 의식과 근육이 마비된 사람들이 대규모로 거리를 배회하는 충격적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대낮 마약음료 협박사건 충격
마약소탕 골든타임 여유 없어
민관 함께 처벌·예방 진력해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한국에서도 번화한 술집에서 필로폰이 섞인 술을 마시고 목숨을 잃고, 공공장소에서 LSD(혀에 붙이는 종이 형태의 환각제)를 복용한 채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 마약은 일상을 파괴하는 전무후무한 ‘악의 축’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10대 청소년들까지 마약이라는 악성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점이다. 마약을 우리 사회에서 일거에 소탕해야 하는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약과의 전면적인 전쟁을 더는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정부가 총력전을 시작했다. 정부는 마약 범죄를 강력하게 단속하기 위해 경찰청과 대검찰청·관세청 등 정부기관이 참여하는 ‘마약 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출범시키고, 이를 중심으로 긴밀한 공조 체제를 구축했다. 경찰은 사이버 정예 수사관을 중심으로 여성청소년·경제범죄수사 등 유관 부서를 대거 투입하여 약물 이용 성범죄, 자금세탁 행위와 다크웹·가상자산을 이용한 마약 거래를 단속하는 등 최근 마약범죄 추세에 입체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민의 삶을 갉아먹으면서 해외에서 무위도식하는 ‘마약왕’들을 검거하기 위해 외국 기관과의 대화 채널을 확장하고, 수사관을 직접 해외에 파견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약 불가침의 대한민국에 마약범이 마수를 뻗치는 순간 그들이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뽑힐 수 있다는 공포심이 뇌리에 새겨질 수 있도록 끝까지 찾아내 단죄할 것이다.

수사기관의 노력은 마약이라는 악의 고리를 이어가려는 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하고 명확한 경고 메시지를 전제할 때 효과가 크다. 재범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법·제도적 혁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시설·인력 등 마약 수사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마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철퇴를 내리치는 형사사법적 접근만으로는 마약과의 전면전을 완전한 승리로 끌어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마약은 강한 정신적·신체적 의존성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중독성 범죄여서 이를 끊어내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중독의 갈림길에 서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동기를 살펴 제거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하도록 우리 공동체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치료와 재활을 수반해야 한다. 마약 범죄가 활개 치도록 하는 인적·물적 요인과 장소·상황 요인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입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와 같은 해법을 위해서는 ‘시민 경찰 아카데미’와 시민순찰을 비롯한 지역사회 범죄 예방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사회는 생명이 있는 유기체와 같다. 가벼운 질병은 신체의 기본적 면역력으로도 상당 부분 대응이 가능하지만, 중증 질환은 특단의 치료 체계를 가동해야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경찰은 이번 전면전이 마약으로부터 국민 개개인의 안전을 지켜내고, 나아가 국민이 신뢰하는 ‘안심 공동체’를 앞당기는 마중물이 되도록 배수진을 치고 임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 우리 사회는 건강을 완전히 잃지 않았고, 굳건한 극복 의지를 가진 국가와 국민이 있다고 믿는다. 마약과의 전면전에서 최종적 승리를 거두도록 우리가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