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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의사수 부족보다 의료 시스템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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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장

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장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인용한 서울의대 교수의 기고문이 최근 신문에 실렸다. 2035년이 되면 의사 수가 2만7000명 부족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보고서’라는 해당 자료는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공의모)’이 곱셈과 나눗셈조차 틀린 사실을 발견해 지난달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보사연은 지난 3일 통계 오류를 인정했다.

보사연은 공의모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여 2035년 의사 수요인 ‘전체 상대가치 업무량 점수(의료수요수치)’를 약 2400억에서 1400억으로 하향 조정했다. 수정된 기준으로 보사연 데이터를 이용해 다시 계산하면 2035년 국내 의사는 무려 3만4000명이나 과잉 공급 상태가 될 것으로 나왔다.

소아청소년과 잇단 ‘폐과 선언’
정확한 통계와 분석작업 필요
현장 의사들의 고충 경청해야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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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연이 잘못된 통계를 도출한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 의사 1인당 업무량(활동 의사 1인당 업무량 점수, 이하 의료공급수치) 기준을 2019년으로 설정한 데 있다. 둘째, 그 수치가 매년 3.2%씩 증가했다는 사실도 간과했다. 의료공급수치는 물가와 의료 수가 인상에 따라 증가하기 마련인데도 의사 1인당 업무량을 2019년부터 2035년까지 동일하게 동결된다고 가정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업무 효율성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배제한 그 통계는 2019년 의료 수가로 2035년 의료 수요를 계산했던 셈이다. 오류로 밝혀진 건 당연한 결과다.

참고로 의료공급수치를 2011~2019년과 동일하게 매년 3.2%씩 증가한다는 가정하에 다시 계산하면 2035년 한국에 필요한 의사는 8만8000명이며, 3만4000명의 의사가 과잉 공급된 상태라는 결론이 나온다.

또한 그 보고서는 ‘전체 의료수요수치’가 2011년부터 2019년까지 9년간 매년 6.5%씩 증가했음에도 2019년부터 미래에는 연 3.37%밖에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구 구조가 고령화할수록 의료수요가 빠르게 상승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도 보사연은 오히려 감소한다고 가정했다.

국가 출연 연구기관인 보사연이 이런 통계 자료를 제시하는 건 분명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면 학자가 이런 오류투성이인 보고서를 기준으로 의사 부족을 주장하는 건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의도적인 통계 악용 중 어디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까.

한국에서 의사 수 증원을 요구하는 논리는 너무 단순하다. 전 국민이 질병을 제때 제대로 치료받으려면 의료 취약 지역이 없어야 하며, 의사 수 증원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료 취약 지역은 모두 지방의 인구 소멸 위험 지역인데, 통계청 자료만 보더라도 인구 소멸 위험 지역은 115곳(기초 지자체 기준)이다. 의료 취약 지역과 인구 소멸 현상은 저출산과 고령화, 청년 일자리 부족, 열악한 사회 인프라 등이 더해진 결과물임으로 단순히 의사 수 과잉 공급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필자는 1991년부터 소아과에 몸담아 30년 이상 지방 도시에서 아동(18세 이하) 환자를 진료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다. 한국 의료 시스템은 어떤 진료든 보험 급여 항목에 해당하면 원가 보상을 안 해준다. 소아청소년과는 그중에서도 가장 열악한데, 원가보존율이 외과가 100.3%라고 제시한 연구에서도 소아과는 34.2%였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상대가치점수 개정 연구 용역)

지난달 29일 소아청소년과 개원 의사 단체의 폐과 선언은 오래전부터 누적된 문제점이 겉으로 분출된 것일 뿐 그다지 새롭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보사연 자료를 제시한 의대 교수의 기고문에는 소아청소년과의 건강보험 진료비가 2020년과 2021년 감소했지만 2022년에는 상승했다며 진료 사정이 좋아진다는 식의 내용을 실었다. 그렇다면 소아청소년과 개원의들은 상황이 개선되는데도 폐과를 선언했다는 말인가.

정부가 진정으로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의료 취약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묻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개교해도 2035년 이후에나 전문의가 배출될 황당한 의대 설립 주장은 답이 아니다. 대신 아직도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지키는 의사들의 고충을 경청하고 인구 변화를 고려한 체계적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