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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총선 앞두고 지역 의대 유치전 과열시키는 정치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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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남 국립의대 설립을 위한 국회 대토론회’ 참석자들. [뉴스1]

지난 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남 국립의대 설립을 위한 국회 대토론회’ 참석자들. [뉴스1]

응급의학과·소아과 등 기피는 의료 시스템 문제

2026년 초고령 사회, 정원 확대는 검토해 볼 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의대 유치전의 열기가 뜨겁다. 지역 대학과 시민단체가 주축인 곳도 있지만 표심을 노린 정치권까지 가세해 지나친 과열 양상을 띠는 곳도 있다. 지난주 안동시의회는 안동대에 의대 설립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해 대통령실과 국회,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그러면서 “안동의 교육 수준 향상과 청년 인구 유입에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국회 교육위원회에는 ‘순천대의대설치·대학병원설립특별법’이 상정됐다. 대표 발의자인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필수 의료 인프라가 가장 열악한 전남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춘식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1000명당 의대 정원수는 경기도가 꼴찌”라며 “경기북부 의료 환경이 열악하므로 대진대에 의대 정원을 최우선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의대 설립을 요청하는 지역만 10곳이 넘는다.

정치권이 의대 유치전에 뛰어든 이유는 정부가 먼저 의대 정원 확대의 시그널을 준 탓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측면이 크다. 지난해 12월 교육부가 보건복지부에 협의를 요청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졌고, 의대 정원을 늘린 것은 1997년 가천대 설립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도 분위기가 맞아떨어졌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러나 지역의 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를 설립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은 적절한 해법이 아니다. 의사 수급과 의대 정원 확대는 분리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내년에 당장 의대가 개교한다 해도 전문의를 배출하는 것은 2035년 이후가 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지역의료 공백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필수 분야의 소외 현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기피 전공의 원가보존율 인상 같은 의료 시스템 개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의대 정원 확대도 검토할 때가 됐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의료 수요를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다. 의대 정원은 2000년 3273명에서 2006년 3058명으로 순차적 감원 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반면에 2026년이면 전체 인구의 20%가 노인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해 의료 수요가 늘어난다. 2021년 기준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4명)보다 적다.

의대 정원 조정 논의가 필요한 건 맞지만, 표심잡기용 포퓰리즘으로만 흘러선 안 된다. 특히 정치권의 주장처럼 지역 발전 논리로만 접근해선 곤란하다. 실습을 위한 대형 수련병원과 임상 경험이 풍부한 교수진도 미리 확보해야 하고, 지역의료에 미치는 영향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차세대 바이오산업을 이끌 의사과학자 양성 등 국가대계 차원의 논의도 함께 이뤄지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