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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냄새 배어도 간다…'출근전 한끼' 낭만 떨어지는 도쿄 이 곳 [쿠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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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 맛보는 색다른 음식은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선물합니다. 한 끼도 허투루 먹을 수 없죠. 미식 여행을 즐긴다면 매주 금요일을 주목하세요. 도쿄의 다채로운 음식 문화와 요리 이야기를 담은 책『도쿄에선 단 한 끼도 대충 먹을 수 없어』의 에피소드 중 네 가지를 골라 미리 연재합니다. 미식의 도시, 도쿄 곳곳에 숨겨진 맛있는 이야기를 중앙일보 COOKING에서 만나보세요.

도쿄 곳곳엔 숨겨진 맛집이 많다. 사진 Pixabay

도쿄 곳곳엔 숨겨진 맛집이 많다. 사진 Pixabay

도쿄는 이른 아침 가볍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참 많은 도시입니다. 그중 조금 느긋하고 분위기 있게 아침 끼니를 해결할 곳으로는 단연 깃사텐(喫茶店, 한자 그대로의 뜻은 음식, 음료, 흡연을 즐기는 공간. 음료 및 식사류를 파는 일본 전통 다방)을 꼽을 수 있습니다. 깃사텐은 얼핏 우리나라 카페와 비슷해 보이지만, 영업시간, 메뉴, 주 고객층 모두 우리가 아는 카페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르면 아침 7시부터 문을 여는 곳이 많고, 대개 아주 공을 들인 강배전(원두를 오래 로스팅한) 커피와 토스트를 제공합니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깃사텐에는 여전히 도쿄의 근대적 낭만이 흐르고 있다는 것. 집기와 인테리어 모두 근대부터 유래된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깃사텐은 원래 오스트리아 빈과 프랑스 파리 등 서구의 카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인테리어, 가구, 조명 등을 일본풍으로 재해석하고, 일본 고유의 메뉴와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마음을 다하는 극진한 대접)를 더해 지금의 깃사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800년대 후반, 문호가 활짝 열린 개화의 시대에 서양에서 들어온 카페를 일본식으로 변주하여 문을 열었던 것이 깃사텐의 시작입니다. 1888년 일본 최초의 깃사텐이 도쿄 북쪽의 우에노(上野)에 깃발을 꽂은 이후 깃사텐은 급속도로 전국에 퍼졌습니다. 특히 도심의 깃사텐들은 당시 문화 발신자 역할을 하던 문인과 문화계 인사들이 모이는 아지트로 부상했습니다.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주요 출입처였던 깃사텐은 시간이 흘러 서민의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가게 숫자가 일본 전체 편의점 수에 버금가니, 어쩌면 가장 대표적인 일본식 식공간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깃사텐을 가장 깃사텐답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깃사메시(喫茶メシ, 깃사텐에서 파는 간단한 식사 메뉴)입니다. 깃사메시는 카레라이스(カレーライス), 오므라이스(オムライス), 나포리탄(ナポリタン), 햄버그스테이크(ハンバーグステーキ), 카츠 산도(カツサンド, 돈카츠샌드위치) 등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일본식으로 변형되어 이제는 와쇼쿠로 정착된 메뉴들로 구성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중 아침에만 제공되는 모닝 서비스(モーニングサービス, 깃사텐 모닝 세트메뉴를 가리키는 일본식 영어)는 깃사텐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입니다. 팥소를 올린 버터 토스트, 낫토를 올린 낫토 토스트, 피자 토스트, 다마고산도(たまごのサンド, 달걀 샌드위치) 등의 메뉴로 구성되곤 합니다. 대체로 커피와 삶은 달걀, 수프 정도가 곁들여지는 단조로운 구성이지만, 대부분의 깃사텐이 이 모닝 서비스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아침 일찍 도쿄 직장가의 깃사텐에 가면 이 모닝 서비스를 먹으려고 찾아온 직장인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절반 이상이 모닝 서비스를 주문합니다. 특히 역전에 자리한 깃사텐에서는, 출근을 앞둔 7~8시 사이 주변 직장인들이 줄을 섰다가 개점 직후 우르르 들어가는 진풍경도 볼 수 있습니다.

단 하나 달갑지 않은 점은, 흡연에 너그러운 깃사텐에는 남녀 불문 애연가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식사 중 담배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이 고역이지만, 이런 단점을 상쇄할 만큼 매력 넘치는 공간인 것도 사실. 첨단의 유행과는 동떨어진 탁자와 의자, 클래식하고 정갈한 제복 차림의 종업원 등 언제나 최신 모드와는 등진 낭만과 거부할 수 없는 ‘올드 패션’의 매력이 충만하기에 지금까지 오랜 세월 견고하게 자리를 지켜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천 도쿄 깃사텐] 르노와르(ルノワール)
주로 역 근처나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 있는 깃사텐 프랜차이즈 체인으로, 정식 상호는 ‘깃사시츠 르노와르(喫茶室ルノワール, ’끽다실 르노와르’라는 뜻. 이하 ‘르노와르’)’입니다. 협소하게 기획된 일부 미니 매장을 제외하곤 대체로 공간이 널찍하고, 여느 깃사텐보다 풍성한 아침 메뉴를 가지고 있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주로 유동 인구가 많은 역 근처, 번화한 도심에 위치해서 고객층이 다채롭습니다. 댄디한 중견 회사원, 은근하게 멋을 낸 중년 여성, 노년의 신사 등 연령대가 높은 손님도 많고, 젊은 남녀나 커리어우먼과 비즈니스맨, 연신 노트북을 두드리며 자리를 떠나지 않는 ‘엉덩이 무거운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천장이 높고 삼삼오오 모여 회의할 수 있는 테이블이 많아, 늘 웅성거리는 소음으로도 가득한 곳입니다.

르노와르의 모닝 서비스는 아침 7시부터 정오까지로, 다른 깃사텐에 비해 긴 편입니다. 모닝 서비스에는 버터 토스트+삶은 달걀+수프, 햄 치즈 포카차 샌드위치+삶은 달걀+수프, 햄&오이 샌드위치+삶은 달걀+수프, 스페셜 샌드위치(삶은 달걀, 베이컨, 감자 샐러드, 양상추를 넣은)+요구르트+수프 등 네 종류가 있습니다. 메뉴판에 실물 사진이 있어 처음 방문한 사람도 쉽게 주문할 수 있습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르누아르의 커피 맛은 보통입니다. 그런데도 르누아르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넉넉한 공간도 한몫하지만, 한편에 비즈니스 미팅 전용 공간을 둔 매장도 있을 만큼 직장인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카페는 매장에 따라 인터넷 사용 요금을 따로 받기도 하는데, 르누아르에선 무료입니다. 도쿄에는 일정 시간 이상 체류하면 퇴장을 요청하는 카페도 많지만, 르누아르에선 그런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천천히 계시다 가라’는 듯이 직원이 돌아다니며 음료가 떨어진 테이블에 따뜻한 오차(お茶, 일본 전통차)를 두고 갑니다. 그래선지 노트북으로 작업하거나 장시간 미팅을 하는 손님이 유독 많습니다. 이처럼 철저히 고객 띄우기 위주의 공간이다 보니, 아침뿐만 아니라 일과 중 고단해졌을 때 쉬었다 갈 곳으로도 안성맞춤입니다.

이정선 작가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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