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성산불 이재민 "우리 책임이 40%라니"…87억 판결에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9년 4월 4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한 주유소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태풍급 강풍을 타고 인근 속초까지 번지고 있다. [뉴스1]

2019년 4월 4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한 주유소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태풍급 강풍을 타고 인근 속초까지 번지고 있다. [뉴스1]

산불 피해보상 관련 '첫 판결' 

축구장 면적(0.714㏊) 1700배에 달하는 산림 1260㏊를 잿더미로 만든 강원 고성 산불(2019년 4월) 피해 보상과 관련해 첫 판결이 나왔다. 3년이 넘는 긴 법정 다툼 끝에 이재민들이 일부 승소했다.

춘천지법 속초지원 민사부(재판장 김현곤)는 20일 이재민 등 산불 피해자 60명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263억원을 달라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이날 재판부는 법원이 지정한 주택과 임야 등 분야별 전문감정평가사 감정 결과를 토대로 감정액의 60%인 87억원을 이재민들에게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번 판결에서 나온 손해배상 비율은 2019년 말 고성지역특별심의위원회 의결 내용과 같다. 당시 이 금액은 한국손해사정사회가 산출했다.

2019년 4월 산림 1260㏊를 잿더미로 만든 강원 고성 산불 관련 한국전력공사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이재민들이 20일 오후 춘천지법 속초지원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4월 산림 1260㏊를 잿더미로 만든 강원 고성 산불 관련 한국전력공사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이재민들이 20일 오후 춘천지법 속초지원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손해배상 청구액 3분의 1 수준

재판부는 "산불 사건 관련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드리지 못하게 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인정된 손해액에서 피고 책임을 60%로 제한했다"며 "피고가 고의 중과실로 화재를 발생시킨 게 아니고 당시 강풍 등 자연적인 요인 때문에 피해가 확산한 점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도 마음이 무겁다. 다시 한번 산불 피해를 보신 분들께 안타까운 마음은 전한다"고 덧붙였다.

이재민들은 청구한 손해배상(263억원)의 3분의 1수준에 그치는 판결이 선고되자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왜 우리가 40%를 책임져야 하는지 설명해달라. 어떻게 복구를 하라는 것이냐"며 항소하겠다고 했다.

김경혁 4·4 산불 비상대책위원장은 “한전 직원 형사 재판에 이어 또다시 재판부가 이재민 가슴에 대못을 박는 판결을 내렸다”며 “항소하고 집회도 열겠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은 2020년 1월 산불 피해자 21명이 한전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추가 소송이 잇따르면서 원고 수와 청구 금액 규모가 크게 늘었다.

2019년 4월 발생한 강원 고성군 산불의 발화지인 토성면 원암리의 전신주 모습. [연합뉴스]

2019년 4월 발생한 강원 고성군 산불의 발화지인 토성면 원암리의 전신주 모습. [연합뉴스]

산불 피해 이재민들 항소 나설 계획

산불 피해자들은 “한국손해사정사회가 산출한 금액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정 다툼을 선택했다. 이후 법원이 지난해 11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지만, 양측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성 산불은 2019년 4월 4일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전신주 개폐기 내 전선에서 불꽃이 튀면서 발생했다. 이 불로 고성과 속초지역 산림 1260㏊ 소실됐다. 899억원에 달하는 재산피해도 발생했다.

당시 전신주 관리를 소홀히 한 혐의로 전·현직 한전 직원 7명이 재판에 넘겨졌는데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전선이 끊어져 산불이 발생한 점은 인정되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19년 4월 발생한 고성산불 4주기를 맞은 지난 4일 한전 속초지사 앞에서 집회를 연 이재민들이 진정서 제출을 위해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까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4월 발생한 고성산불 4주기를 맞은 지난 4일 한전 속초지사 앞에서 집회를 연 이재민들이 진정서 제출을 위해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까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난지원금 둘러싼 재판도 늦어져 

이와 함께 2019년 4월 고성산불 피해 당시 정부가 이재민에게 준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정부와 한전 간 법정 공방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변론 종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춘천지법 민사2부(윤경아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한전이 정부와 강원도 등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반대로 정부와 강원도 등이 한전을 상대로 제기한 비용상환청구 사건 변론기일을 열었다.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은 2021년 정부가 구상권(제3자가 채무를 대신 갚아준 뒤 원 채무자에게 지급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청구방침을 밝히자 한전이 300억원 규모 채무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해달라고 제기한 소송이다. 이에 정부도 한전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는 맞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다음 달 17일 변론기일을 한 차례 더 진행하기로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