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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태영호 사라진 최고위…징계 대신 사퇴론 띄우는 與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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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부정과 잇단 실언으로 논란을 빚은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2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했다. ‘전광훈 목사 우파 천하 통일’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른 김재원 최고위원이 자숙의 의미로 이달 초부터 회의에 불참한 데 이어 태 최고위원도 자리를 비운 것이다. 선출직 최고위원 4명 중 2명이 빠지며 집권 여당의 심의·의결 기구는 출범 한 달여 만에 반쪽이 됐다.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 국회사진기자단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 국회사진기자단

태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 참석 대신 윤재옥 원내대표를 만나 약 30분 면담했다. 윤 원내대표는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태 의원과 앞으로 이슈 대응할 때의 기본적인 스탠스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그분이 생각하는 선의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를 수 있어) 국민의 기본적인 입장을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정도(로 말했다)”고 전했다.

앞서 태 최고위원은 “백범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했다”와 “제주 4·3사건은 김일성 지시로 촉발했다”는 주장으로 설화를 일으킨 상황에서 페이스북에 “쓰레기(Junk)·돈(Money)·성(Sex) 민주당. 역시 JMS 민주당”이란 메시지를 써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특히 김구 선생에 대한 발언이 공개된 직후엔 김기현 대표가 태 최고위원을 불러 “역사 논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경고했다. 2년 전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곳이 백범 김구 기념관이고 윤 대통령 등 여권 지도부는 기회가 될 때마다 김구 선생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는데, 태 최고위원이 용공(容共) 인사로 폄하한 셈이기 때문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뉴스1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뉴스1

두 최고위원이 잇따라 물의를 일으킨 뒤 자숙에 들어가면서 당내에선 실질적인 징계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설화→구두 경고→셀프 징계라는 반복된 패턴에 대한 당내 피로감도 크다. 전국 200여명의 당원은 김재원 최고위원 징계 요구서를 20일 당에 제출했고 김병민 최고위원은 같은 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윤리위가 단호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오는 24일 공식 출범 예정인 윤리위원회가 출범 이전에 있었던 일을 소급 적용해 징계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판사 출신인 김 대표가 지난 6일 “이 시각 이후 당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언행에 대해 당 대표에게 주어진 권한을 엄격하게 행사하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불소급의 원칙’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6일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김재원 최고위원과 이달 초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운동’을 제안해 논란이 된 조수진 최고위원은 징계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당 일각에선 “지도부가 최근 잇따라 자진 사퇴론을 띄우는 것은 결국 윤리위 징계 국면을 비껴가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당원이 선출한 최고위원이 시작부터 줄줄이 징계위에 올라가 당과 공방을 벌일 경우 한동안 김기현 체제는 ‘윤리위의 시간’에 잠식될 수 있으니 이를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20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서 영령들에게 참배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방명록에 ″저의 잘못으로 4·3유가족 여러분께 마음의 상처를 드린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라고 썼다. 뉴시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20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서 영령들에게 참배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방명록에 ″저의 잘못으로 4·3유가족 여러분께 마음의 상처를 드린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라고 썼다. 뉴시스

이런 가운데 김재원 최고위원은 20일 제주시 제주 4ㆍ3 평화기념관을 방문해 “4·3 기념일은 3·1절에 비해 격이 낮다”는 발언을 사과했지만 유족 측은 “진정성이 없다”며 반발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14일엔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을 사과했다. 지도부 고위 관계자는 “굳이 저렇게 돌아다니며 사과하는 건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뜻 아니겠냐”며 “우리로선 자진 사퇴가 가장 좋은 방안인데 당사자가 그럴 뜻이 없으니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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