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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코스닥의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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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1996년 7월 개장한 코스닥은 ‘장외거래 주식시장’으로 불렸다. 증권거래소에서 중개인을 통해 이루어지던 당시 주식 거래와 달리 컴퓨터와 통신망을 이용해 매매됐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1999년, 벤처 바람에 힘입어 법적으로 ‘장내’ 지위를 획득했지만, 여전히 코스피에 이어 ‘2부 리그’쯤으로 인식되는 게 사실이다.

잊을만하면 나오는 ‘거품’ 논란이 이런 인식을 키웠다. IT 광풍이 불던 2000년 3월 코스닥은 최고점인 2834.40을 찍었다. 하지만 불과 8개월 뒤 500선까지 무너졌다. 하나로통신·새롬기술 등 대표 종목이 바닥으로 추락했고, 수많은 투자자가 피눈물을 흘렸다. 이후 20년간 박스권에 갇혔던 코스닥은 2018년 1월에야 900선을 회복했다. 당시 ‘코스닥의 엔진’으로 불리던 바이오 업체 덕분이었다. 하지만 엔진은 금방 식었고, 1년 만에 600선까지 밀렸다.

코스닥지수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올해 상승률은 33.9%. 전 세계 최고다. 형님 격인 코스피(15.2%)는 물론이고, 글로벌 성장주가 모인 미국 나스닥(16.2%)도 크게 앞섰다. 최근엔 하루 거래대금이 시가총액 덩치가 5배나 큰 코스피보다 많다. 화끈한 상승을 주도한 건 2차 전지다. 2차 전지의 핵심 소재를 만드는 에코프로비엠과 모회사 에코프로의 주가는 올해 각각 세 배, 여섯 배로 올랐다. 두 회사는 단번에 코스닥 시가총액 1, 2위가 됐다. 엘앤에프·엔켐 등 다른 소재주도 덩달아 뛰었다.

이런 주가 급등이 전혀 실체가 없는 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유럽이 내연기관 규제에 착수하면서 2차전지 수요가 예상보다 빨리 폭발할 거란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코스닥의 숱한 부침을 경험했던 투자자는 불안하다. 일단 ‘빚투(빚내서 투자)’가 급증했다. 코스닥 신용융자 잔액은 지난해 6월 이후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섰다. 사명에 ‘에코’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주가가 덩달아 뛰는 경우마저 생겼다.

코스피는 실적으로 먹고살고, 코스닥은 꿈으로 먹고산다는 증시 격언이 있다. 그래서일까, 코스닥은 ‘대박 꿈’을 꾸는 개인투자자 거래 비중이 80% 이상이다. 아무리 유망한 산업이라도 가치의 계산 과정엔 시차가 존재한다. 투자자가 밝은 면에 집중하는 사이 거품이 형성된다. 그 거품이 고통 없이 그냥 사라지는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