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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1000원 아침밥과 음마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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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형수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형수 국제부 기자

박형수 국제부 기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의 유명한 격언이다. 모든 이익엔 상응하는 대가 또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자주 인용하며 유명해졌지만 그가 만든 말은 아니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 한 술집의 마케팅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 술집은 술을 일정 한도 이상 마시면 ‘공짜 점심’을 준다는 이벤트를 펼쳤고 이에 혹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공짜 점심을 먹으려면 술을 마셔야 하고, 결국 점심값은 술값에 포함된 셈이었다. 본인의 술값뿐만 아니라, 술만 마시고 점심은 먹지 않은 이들이 지불한 금액에서도 공짜 점심값은 빠져나간다. 누군가 취한 공짜 이득의 대가는 모두의 주머니에서 공동 각출된다는 얘기다.

2000년대 후반 공짜 점심은 미국 실리콘밸리 복지의 상징이었다.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등은 미쉐린(미슐랭) 셰프의 요리, 유명 바리스타가 직접 내린 커피, 최고급 맥주 기계, 스낵바 등을 갖추고 호화로운 먹거리를 직원에게 제공했다. 이에 대해 마틴 맥머한 플로리다대 교수는 “5만 달러 연봉과 연간 2000달러 어치 무료 식사를 제공받은 직원에게, 정부는 5만2000달러에 대한 세금을 매겨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세금 붙은 음식을 사먹은 나같은 사람이 구글 직원에게 공짜 음식을 제공한 셈”이라며 비판했다. 일반 노동자가 지불한 ‘부가세 붙은 식대’로 실리콘밸리 고액 연봉자의 공짜 식대를 메꾼다는 지적이다.

최근 ‘1000원 아침밥’이 화제다. 정치권은 배고픈 대학생의 허기를 달래줘야 한다며 ‘1000원 점심·저녁밥’ 확대를 외친다. 하지만 국가장학금 자료에 나타난 대학생들의 경제력은 ‘고소득층 증가, 저소득층 감소’가 뚜렷하다. 대학엔 경제력 있는 젊은이가 몰리고, 형편이 어려운 이들은 사회로 진출한다는 얘기다. 고등교육을 포기한 가난한 젊은이가 낸 세금으로, 경제력이 있는 대학생들의 식비를 대고 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공짜 점심은 없다’와 같은 의미의 고사로 음마투전(飮馬投錢)이 있다. 말에게 강물을 먹인 뒤, 물 값을 강물 속에 던진다는 의미다. 주인 없는 강물도 쓴 만큼 값을 치른다는 자세다. 선거를 앞두고 ‘MZ 표심 잡기’에 혈안이 된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을 보며 한번쯤 되새겨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