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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스팔트 목사에 휘둘리는 신세…국민의힘 자업자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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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17일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17일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광훈 목사 “국민의힘 버르장머리 고쳐주겠다” 폭언

극단적 우파와의 제휴로 망친 2020년 총선 기억해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위기에 빠진 자유민주주의 수호 방도를 제시한다”며 “전 국민적 국민의힘 당원 가입 운동, 공천권 폐지, 그리고 당원 중심 후보 경선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이어 “내가 (국민의힘 인사들에게) ‘내년 총선에서 200석 할 자신 있냐’고 물었더니 ‘목사님이 도와주면 자신 있다’고 했다”며 “‘그렇다면 내가 독자 정당 창당을 미루고 당신들의 자세를 보고, 창당을 하든지 안 하든지 당신들의 버르장머리를 반드시 고쳐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발끈했다. 김기현 대표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그 입을 당장 좀 닫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유상범 대변인은 ‘국민의힘 당원 가입 운동’에 대해 “결국 내년 총선 공천에 관여하겠다는 시커먼 속내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목사 한 명의 발언에 당 대표와 대변인이 반박에 나선 건 당 전체가 허우적댔던 ‘전광훈 수렁’에서 어떻게든 탈출하겠다는 안간힘으로 해석된다. 이번 사태는 전 목사를 만난 김재원 최고위원의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대” 입장 표명, “전 목사가 우파를 천하통일했다”는 발언에서 촉발됐다. 당이 김 최고위원 징계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한 홍준표 대구시장을 김 대표가 상임고문에서 해촉하면서 자중지란으로 치달았다. 그 사이 전 목사는 홍 시장을 “이 자식”이라 부르고 “정치인은 종교인의 감시가 없으면 자기 통제가 불가능하다. 나의 통제를 받아야 된다”며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사태는 국민의힘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2019년 대표 경선 당시엔 특정 후보가 전체 선거인단의 2%에 해당하는 수천 명의 ‘태극기 부대’를 입당시켰다는 얘기가 돌았다. 자유한국당은 조국 사태를 거치며 발족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에서 전 목사 세력과 손을 꽉 잡았다. “패악한 정권을 향해 (비판을) 외치는 이사야 같은 선지자”라고 전 목사를 치켜세웠던 김기현 대표의 연설도 그 즈음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적 수렁에 빠졌던 보수 세력엔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절치부심의 자세가 필요했지만 극단적 우향우의 후유증에 ‘코로나 대유행’까지 맞물리며 중도층에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 결과는 2020년 총선의 역사적·궤멸적인 참패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김기현호’는 과거 교훈까지 까맣게 잊은 듯 김 최고위원 징계를 미루는 듯한 태도로 이번 사태를 키웠다. 전 목사가 이끈 정당의 득표율은 2008년 총선 때의 2.6%가 최고였을 뿐이다. 국정 안정을 위해 총선 승리가 필요하다면 과대 포장된 아스팔트 우파의 영향력을 곁눈질하기보다 합리적이고 상식 있는 전체 국민을 보고 정도를 가는 게 순리다. 2020년 총선 때처럼 국민은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