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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역은 달러로 해야 하나…탈달러 세력 뭉치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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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의 달러 패권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중국은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위안화 국제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매일 밤 나는 왜 모든 국가가 달러화를 기반으로 무역해야 하는지 자문했다.” 중국에 국빈 방문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상하이 신개발은행(NDB)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왜 우리는 자국 통화로 무역할 수 없는가. 금본위제가 사라진 뒤 달러화를 (국제 통용) 화폐로 결정한 것은 누구였나”라고 지적하면서다.

글로벌 무역금융 시장에서 주요 통화 점유율 추이

글로벌 무역금융 시장에서 주요 통화 점유율 추이

17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최근 중국과 브라질은 양국 무역에서 ‘탈(脫)달러’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양국 거래에서 위안화와 헤알화를 쓰기로 합의했는데, 달러를 우회하는 대규모 무역금융 거래로 평가된다. 중국은 2009년부터 브라질의 최대 무역상대로 자리 잡았고, 브라질은 중국의 10위 무역 파트너다.

위안화는 국제 무역금융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의 무역금융 데이터에 따르면 시장가치 기준 위안화 점유율은 지난 2월 4.5%로, 1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점유율 6%를 차지하는 유로화와 경쟁 구도를 형성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지정학적 원인에 주목한다. 서방의 제재를 받게 된 러시아가 위안화를 지불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무역액은 지난해 1850억 달러(약 245조 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설정한 무역액 2000억 달러 목표가 2024년이 아닌 올해 실현될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했다.

여기에 중국은 중동 산유국과도 밀착하면서 위안화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 이후 위안화의 지배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평이다. 중국 수출입은행은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은행에 무역 대금 결제용으로 위안화 대출을 처음 시행했다. 에너지 거래에는 관행적으로 달러를 사용했는데, 위안화가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지난 1년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도 ‘위안화 국제화’를 가속한 원인으로 꼽힌다. 달러 강세로 미국 외 국가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중국 위안화 선호가 커졌다는 해석이다. 특히 환율 변동에 민감한 신흥국을 중심으로 ‘달러 패권’에 불만이 쌓였다.

중국은 신흥국에 대한 구제금융을 늘리는 등 ‘차이나 머니’의 위력을 키워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이 2000년 이후 경제난에 처한 국가에 제공한 긴급 자금이 2400억 달러(약 311조원) 규모라고 보도했다. 긴급자금의 기준 통화는 90% 이상이 위안화다.

다만,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는 수준으로 지배력을 키울지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중국이 엄격한 자본 통제를 시행하고 있어, 위안화의 신뢰도와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서다.

타일러 코웬 미 조지메이슨대학 교수는 “자본시장이 개방되지 않는 한, 위안화는 달러의 강력한 경쟁자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학자인 피터 얼은 “탈달러가 수십 년 이어지더라도 위안화가 세계 기축 통화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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