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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봉투 연루자 출당 조치? 민주당의 이재명 이중잣대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한 대응을 고심하고 있다.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이재명 대표와 비교했을 때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6일 내부 논의를 거쳐 다음주부터 당내 기구를 통해 돈봉투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강선우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진상 규명에 여러 방법이 있는데 조사도 할 수 있다”며 “디테일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도부는 17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대응수위와 방향을 매듭짓겠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홍근 원내대표, 조정식 사무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홍근 원내대표, 조정식 사무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당 지도부 일각에선 돈봉투 공여 의혹이 제기된 윤관석 의원과 이성만 의원의 ‘선제조치’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2021년 5월 송영길 전 대표 캠프에 있었던 두 사람이 돈 봉투를 전달한 정황을 뒷받침하는 녹취록이 언론에 보도된 이상 검찰의 기소는 사실상 정해진 수순이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당 지도부는 두 의원이 자발적 탈당 등을 통해 당에 부담을 덜어줬으면 하는 눈치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선택된 녹취록을 통한 여론 재판”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그렇다고 당 지도부가 윤 의원과 이 의원에게 직접적으로 탈당을 권유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말인 16일에도 당 지도부 관계자들은 “답이 없다”거나 “정무적 판단이 요구된다”며 신중을 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도부가 결정을 내리기 힘든 가장 큰 요인은 이른바 ‘이재명 딜레마’다. 민주당은 그동안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쌍·대·성(쌍방울ㆍ대장동ㆍ성남FC)’ 수사를 정치 탄압으로 규정하고 거당적으로 반발했다. 지난달 22일엔 당무위원회를 열고 기소된 이 대표의 당 대표직을 유지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검찰의 정치적 탄압이 너무나 명백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아직 검찰 조사도 안 받은 윤·이 의원에게 탈당을 요구한다면 재판까지 받아도 무탈한 이 대표와 대비돼 형평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터져나올게 뻔하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이성만 의원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이성만 의원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그래서 당 조사단을 꾸려 자체 진상규명에 나서는 정도를 일단 대안으로 모색중이다. 녹취록과 명단이 공개될 때마다 여론에 끌려갈 바에야 자체 조사를 통해 의혹을 해소해보겠다는 것이다. 당내에서 돌고 있는 돈봉투 의원 리스트 등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당헌·당규에 규정된 윤리감찰단을 가동해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당 대표 직속 기구인 윤리감찰단은 대표 지시로 감찰에 착수하고 대표에게 결과를 보고하도록 돼 있다. 기소돼 재판을 받는 이 대표가 남에 대한 윤리감찰을 지시하는 순간 민주당은 ‘내로남불’ 프레임에 갇혀버릴 가능성이 크다. 또다른 이재명 딜레마다.

당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별도 진상조사단을 꾸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안민석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에 “무엇보다 이번 조사의 신뢰를 얻기 위해 조사단은 전원 외부인사로 구성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누구도 신뢰하지 않고 안 하니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에선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마당에 외부 진상조사단이 무슨 역할을 하겠냐”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9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송영길 상임고문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록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9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송영길 상임고문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록 기자

조사가 진행돼도 이재명 딜레마를 떨치긴 어렵다. 조사 결과 출당 조치 등의 강력한 징계가 나올 경우 곧장 이 대표를 향한 내로남불 시비가 제기될 수 있다. 반면 징계가 소극적일 경우 당직 개편을 통해 겨우 잠재운 내부 계파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지도 모른다. 이 대표가 이른바 ‘밀월 관계’로 의심받는 송영길 전 대표 측을 감싸고 도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비명계 의원은 “앞으로도 여기에 연루된 의원들이 계속 나올 텐데, 당 대표가 본인 문제에 묶여 있으니 결단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비명계 의원은 “즉각 사실관계를 따져 책임을 묻지 않으면 당이 침몰할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당 대표의 처지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여당은 민주당 자체 조사 방침이 ‘셀프 면책’이라고 비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이 이제야 ‘적당한 기구’를 통해 자체 조사를 하겠다고 뒷북을 치고 있는데 결국 적당히 조사해서 적당히 묻고 가겠다는 검은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며 “결말이 뻔히 보이는 ‘셀프 면책’”이라고 주장했다.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도 “이재명 대표가 엄청난 중대 범죄를 안고 있다 보니 ‘쩐당대회’를 공모한 의원들이나 또 다른 범죄를 가진 의원들에게도 줄줄이 면죄부를 줄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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