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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챗GPT와 AI 국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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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호 30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컴퓨터는 인간에게 어렵고 복잡한 문제는 잘 풀지만 반대로 인간이 쉽게 하는 동작이나 행동은 어려워한다. 미국의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이 정의한 ‘모라벡의 역설’은 기계나 로봇의 구조적·태생적 한계를 설명할 때 종종 인용되는 문구다. 인공지능(AI)이 아무리 발달해도 정작 걷고 느끼고 생각하는 인간의 기본 행위는 쉽게 따라 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한마디로 요약한 셈이다. “인간 최고수를 능가하는 바둑 AI보다 평범한 고객 응대 챗봇을 만드는 게 더 어렵다”는 AI 전문가 폴 헤닝거의 진단도 같은 맥락이다.

불통·내로남불 구태 벗지 못하면
머잖아 AI가 의원들 대체할 수도

그런데 최근 이 같은 AI의 속설을 무색하게 하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챗GPT가 대표적이다. 챗GPT가 스마트폰 이후 최고의 디지털 혁명으로 불리는 건 대화형·생성형·범용이기 때문이다. 입력하면 일회성으로 답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고, 단순히 기존 데이터를 나열·제시하는 게 아니라 최적의 답변을 스스로 ‘생성’할 수 있으며, 바둑 AI처럼 특정 분야만 전문이 아니라 일상생활은 물론 경제·창작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범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파격적·혁명적 진화를 이뤘다는 평가다.

반응도 가히 폭발적이다.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가 전 세계 3억 개 정규직 일자리를 자동화 위험에 노출시키고, 이로 인해 변호사와 행정·사무직 등은 정리해고 당할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정도는 그나마 보수적인 전망치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는 미국 전체 노동자의 80%가 GPT 기술의 영향을 받게 될 거라고 예측했다. 한마디로 일자리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뀔 것이란 얘기다. 이처럼 AI가 물적 차원을 넘어 ‘넘사벽’으로 여겨지던 지적 행위마저도 스스로, 단시간에, 대량생산까지 할 수 있음이 입증되면서 “조만간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도 커지고 있다.

정치는 어떻게 될까. 사실 정치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도의 지적 활동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상대한다는 점에서다. 정치 지도자의 유·무능을 가르는 핵심 잣대 중 하나가 ‘공감’ 능력인 것도 이 때문이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기계는 칩만 있는 데 비해 사람은 마음을 가졌다”며 인간과 AI의 근본적 차이를 강조한 것도 같은 이치다. 아무리 극단적으로 대립해도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을 통해 끝내 타협을 이뤄낼 경우 우리는 이를 ‘정치 예술’이라 부르지 않나. 그런 만큼 정치는 AI가 대체하기엔 결코 쉽지 않은 분야라는 게 그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아우르는 감성 능력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소통은커녕 불통만 일삼고 공정은커녕 내로남불만 난무하는 정치라면, 이런 오랜 구태를 벗을 생각조차 없는 정치인이라면 AI로도 충분히 대체 가능하지 않겠는가. 일도 공정하게 처리하고, 최소의 시간으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 내며, 챗GPT처럼 소통도 훨씬 능숙하게 하는 AI라면 한국의 정치인들보다 정치를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난 3일 고교 야구대회엔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하는 로봇 심판이 처음 등장했다. 미국 메이저리그도 내년 시즌 도입이 목표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분야에서도 금단의 벽이 속속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엔 챗GPT4 버전까지 나왔다. 이 속도로 빠르게 진화하면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전부 AI 국회의원들로 채워질 날도 멀지 않았다. 만약 AI와 현 정치인이 동시에 출마할 경우 한국의 유권자들은 과연 누구에게 표를 주게 될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 돈이 드는 일도 아니잖은가. 말 그대로 ‘마음’만 있으면 될 텐데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럴 ‘마음’조차 없어 보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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