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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백 걸친 독실한 집사님…강남 교회 신도들 500억 뜯긴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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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서울 강남구 역삼동 유명 교회의 신모(65) 집사는 독실하기로 이름난 신자였다. 2000년대부터 교회에 나온 신씨는 매일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았고 온갖 봉사 활동을 도맡았다. 그러면서 신도들의 신망을 얻었다.

신씨의 직업은 대부업자였다. 2016년 1월부터 신도들에게 “내게 돈을 투자하면 크게 불려주겠다”라고 권유했다. 신도들이 돈을 대면 기업들에 긴급자금을 대부하거나 정치자금을 세탁하는 식으로 불린 뒤 그 이익금을 나눠주겠다는 취지였다. 신씨는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고 명품백 등을 걸치고 다녔고 교회에 돈 들어갈 일이 있으면 척척 거액을 내놓았는데, 그런 신씨를 신도들은 의심치 않았다.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데다 돈까지 많다”는 게 신씨에 대한 신도 사회 세평이었다.

일부 신도들은 신씨가 대부나 투자 대상 기업의 이름이나 정치인의 이름을 대지 않는다는 점을 의심했지만 그럴 때마다 신씨는 “하나님이 고수익을 보장한다” “기도의 힘을 믿으라”고 달랬다. 투자 유치 초기엔 약속한 날에 약정 이익금을 꼬박꼬박 돌려준 것도 신뢰를 이어가는 데 주효했다. 신도들에게 끌어모은 투자금을 날로 커져만 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신씨가 약속을 어기기 시작하자 불안감을 견디다 못한 신도들은 “돈을 돌려달라”라고 하소연했다. 급기야 2020년 8월 한 장애인 신도가 교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플래카드에는 “달콤한 언변과 미끼로 영세 서민들 유혹…빨리 돈 내놔라“ “○○○ 집사 4억 3900만 원 갚아라” 등의 내용이 담겼다. 비슷한 시기 경찰은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신씨, 피해자 맞고소…국세청에 신고 

 하지만 신씨는 신도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1인 시위를 한 신도에 대해선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장을 냈다. 자신을 고소한 신도에게는 “이자소득을 국세청에 신고하겠다”거나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하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신씨는 실제로 한 신도를 국세청에 신고해 세금이 징수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신씨에 대한 고소장도 쌓여갔다. 그러자 신씨는 아직 고소하지 않은 신도들에게만 원금 등을 돌려주면서 고소한 신도들에게는 “1원도 돌려주지 않겠다”라며 취하를 요구했다.

경찰은 2021년 5월 신씨에 대해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신씨가 기업 대부 사업 등을 추진하지도 않고 추진할 의향도 없으면서 거짓말로 신도들을 속여 거액을 뜯고 ‘돌려막기’를 하며 범행을 이어갔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범죄 혐의에 대한 구체적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경찰은 두 차례 더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이번엔 검찰이 “또 영장이 기각되면 피의자가 기각된 것을 근거로 범행에 정당성을 부여할 우려가 있다”며 반려하고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2022년 9월 6일 서울중앙지검. 최근 서울 강남구 유명 교회에서 발생한 500억원대 사기 사건을 재판에 넘겼다. 뉴스1

2022년 9월 6일 서울중앙지검. 최근 서울 강남구 유명 교회에서 발생한 500억원대 사기 사건을 재판에 넘겼다. 뉴스1

 수사를 마친 경찰은 2022년 10월 “신씨가 교회 신도 32명을 대상으로 267억원의 사기를 쳤다”며 불구속 상태로 신씨를 검찰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 구태연)는 전면적인 보완수사에 나섰다. 신씨를 출국금지하고 전방위 계좌추적을 벌였다. 결국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올해 3월 28일 신씨를 구속해 지난 13일 기소했다. 공소장에 쓰인 피해 규모는 537억원, 피해자 수는 53명에 달했다. 보완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수는 18명, 피해금액은 270억원이 추가된 것이다.

피해자 중에는 평범한 직장인, 주부, 취업준비생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생활비나 노후자금, 자녀 학자금, 병원비 등을 신씨에게 뜯긴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피해자 중엔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적금을 해약하고 카드대출까지 받아 돈을 마련한 사례까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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