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전원위원회가 13일 나흘간 진행한 선거제 토론을 마무리했다. 100명 의원이 저마다 대안을 쏟아낸 백가쟁명이 연출됐지만, 그만큼 이해관계가 엇갈려 합의 도출이 난망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앙일보가 이날 100명의 발언을 전수조사한 결과, 현행 소선거구제 유지를 주장한 의원은 25명으로 발언자의 4분의 1이었다. 중대선거구제(중선거구제·대선거구제 포함) 주장은 19명이었다. 국민의힘에서는 ‘서울 한정 중선거구제’(이달곤 의원) 의견이, 민주당에서는 6대 광역시 한정 대선거구제(김종민 의원) 아이디어가 나왔다. 도시에서는 중대선거구제를, 농촌에서는 소선거구제를 하자는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는 7명이 제안했다.
비례대표제 개편 주장 중엔 ‘권역별 비례제’를 제안한 이들이 31명으로 가장 많았다. 권역별 비례제는 전국을 인구 비례에 따라 5~6개로 나누고 해당 권역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영호남 지역주의 구도를 완화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동서 권역을 하나로 묶는 ‘지역균형 비례제’(윤호중 민주당 의원·정희용 국민의힘 의원) 아이디어도 여야에서 동시에 나왔다.
국민의힘 의원 6명은 비례제 완전 폐지를 주장했다. 이날 연단에 오른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비례제를 폐지하고, 지역대표제를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반면에 정의당에서는 “비례 의석수 대폭 확대”를 주장했는데, 류호정 의원은 “지역구 240명, 비례대표 120표를 제안한다”며 “정의당이 아니어도 좋으니 국회가 공정한 룰에 의해 구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꺼내 든 정수 축소 논의도 테이블에 올랐다. 연단에 오른 여당 의원 31명 중 9명이 정원 감축을 주장했다. 특히 조경태 의원은 “100석 국회의원 줄이자는 운동을 하겠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정치 혐오에 기대 대안도 없이 의원 정수 축소만을 주장하려면, 아예 더 화끈하게 2명으로 줄이는 것은 어떠냐”며 비꼬기도 했다.
의원 정수를 언급한 민주당 의원 대다수(5명)는 정수 확대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이날 “김 대표가 제안한 30석 축소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자”고 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이 의원이 발언을 마치고 들어가자 여당 의원 사이에서는 “잘했어요”라며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의원 전원이 참여해 토론하는 전원위 가동은 2003년 이라크 파병 동의안 논의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 빈손에 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도 단 94명만이 100번째 발언자의 제안을 경청했다. 연단에서는 “아무것도 합의된 게 없는데 전원위 끝나고 며칠 새 합의안을 만드는 졸속 입법을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선거 제도 개혁이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추진할 만한 사안이냐”(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전날 양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100명이 대체로 공감하는 안을 추리라고 지시했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전원위는 처음부터 결론을 내리기 위해 소집한 게 아니라, 의원들의 솔직한 생각을 듣기 위했던 것”이라며 “이제야 선거제 논의가 비로소 시작됐다”고 자평했다.
다만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하는 상황에서, 당장 다음 논의가 진행되기 어려울 거란 관측도 나온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국민의힘 측에 전원위 소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요청을 했으나,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며 “계속 협상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