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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극물 테러 당했지만 최후진술도 '푸틴 저격'...반러 인사의 소신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 야당 인사인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가 10일(현지시간) 열린 자신의 재판에서 "반성해야 할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등 범죄자들"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야당 인사인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가 10일(현지시간) 열린 자신의 재판에서 "반성해야 할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등 범죄자들"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해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활동을 했다가 반역죄 등으로 투옥된 반(反)러 인사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42). 그는 10일(현지시간) 열린 재판 최후 진술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반성해야 할 자들은 (블라디미르) 푸틴을 비롯한 범죄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활동이 자랑스럽다며 소신을 지켰다. 앞서 러시아 검찰은 그에 대해 징역 25년형을 구형했다.

CNN·가디언 등에 따르면 카라-무르자는 러시아군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위험한 단체 활동, 국가 반역죄 등의 혐의를 받는다. 해외에 머물며 푸틴 정권에 반대하는 활동을 한 혐의다. 지난해 3월 미 애리조나주 의회에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터전을 폭격하는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연설한 게 대표적이다.

카라-무르자는 "언젠가 러시아에도 어둠이 걷히고 전쟁을 전쟁이라 말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카라-무르자는 "언젠가 러시아에도 어둠이 걷히고 전쟁을 전쟁이라 말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AP=연합뉴스

그는 최후 진술에서 "재판부는 반성해야 형을 덜어준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도 뉘우칠 일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한 일들이 자랑스럽다"며 "유일하게 자책하는 한 가지는, 푸틴 정권이 전 세계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 더 알리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 러시아에도 어둠이 걷히고 전쟁을 전쟁이라 말할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고는 오는 17일 열릴 예정이다.

카라-무르자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졸업 뒤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2004~2005년엔 BBC의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했고, 2005년엔 소련 반체제 운동의 역사를 다룬 4부작 TV 다큐멘터리 '그들은 자유를 선택했다'를 제작했다.

반(反)러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가 보리스 넴초프 추모식에 참여했다. 보리스 넴초프는 무르자를 정계에 입문 시킨 전 러시아 부총리다. AP=연합뉴스

반(反)러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가 보리스 넴초프 추모식에 참여했다. 보리스 넴초프는 무르자를 정계에 입문 시킨 전 러시아 부총리다. AP=연합뉴스

정계에 입문한 건 러시아 야당 지도자 고(故) 보리스 넴초프의 보좌관이 되면서다. 두 사람은 함께 푸틴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관련 푸틴 정권의 비리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2015년 넴초프는 괴한에 총살당했고, 카라-무르자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독극물에 중독됐다가 치료를 받고 회복했다.

2017년 넴초프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상영하던 중 카라-무르자는 또 한 번 독극물 중독으로 혼수상태 빠졌다. 이후 해외로 나가 치료를 받고 오랫동안 머물렀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하자 이를 막기 위해 가족을 두고 홀로 귀국했다가 지난해 4월 러시아 경찰에 체포됐다.

무르자는 두 차례 독극물 테러 배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무르자는 두 차례 독극물 테러 배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그는 마그니츠키법(Magnitsky Act)을 만드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 제정된 이 법엔, 미국이 인권침해·부패 등의 범죄자에게 재산 동결, 비자 발급 제한, 미국 기업과 거래 금지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은 "카라-무르자는 마그니츠키법 통과를 가장 열정적으로 옹호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캐나다·유럽연합(EU)에도 비슷한 법을 제정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자국에선 탄압받았지만, 해외에선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난해 10월 유럽평의회는 그에게 하벨 인권상을 수여했다. 인권 운동에 앞장선 체코의 초대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을 기리기 위해 2013년에 제정된 상이다. 그는 알렉세이 나발니와 함께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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