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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눈으로 밤 지새운 이재민 대피소…상인들은 온정의 손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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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아침 강릉을 덮친 산불은 8시간 만에 꺼졌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은 다음날까지도 산불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12일 오전 8시 산불 이재민 323가구가 하룻밤을 보낸 강릉 아이스아레나는 아침 일찍부터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12일 강원도 강릉 산불 이재민 대피소로 활용되고 있는 아이스아레나에서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자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12일 강원도 강릉 산불 이재민 대피소로 활용되고 있는 아이스아레나에서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자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전날 오전에는 사천중학교와 경포동 주민센터도 이재민을 수용했지만, 오후부터는 대피소를 아이스아레나 경기장으로 일원화했다. 총 136개 구호 텐트가 설치된 이곳에선 양말, 세면도구, 속옷, 담요, 옷가지 등으로 구성된 구호 물품을 제공했다.

산불 영향으로 교내 시설 점검을 하느라 휴교한 경포대초 학생들은 나눠준 체육복을 입고 관중석에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텐트 주위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아침 식사를 하던 이재민들은 한탄 섞인 이야기를 나눴다. 자원봉사자들은 하나둘씩 깨어난 주민들의 텐트를 일일이 방문해 불편한 곳이 없었는지 물었다. 주민들은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몸도 마음도 불편했던 하룻밤에 대해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특히 바뀐 잠자리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재민들이 많았다. 이번 산불로 집을 잃은 최모(58)씨는 “집도 잃고 낯선 곳에서 자다 보니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라며 “화장실도 사람이 너무 많이 씻기도 불편했다”고 말했다. 아침 식사를 하던 저동 주민 A씨는 “밥맛이 없어 라면으로 때우고 있다”며 “체육관이라 그런지 말소리도 울리고 발소리도 크게 들려 중간중간 깨곤 했다”고 토로했다.

오전 9시 30분쯤 자택이 불에 탄 주민들의 피해 신청을 받는다는 방송이 나오자 텐트 안에 있던 주민들이 곳곳에서 몰려나와 접수처 일대에 수십 명의 사람이 몰리기도 했다.

전날 자정까지 이웃 주민들과 대책을 이야기하던 김형택(74)씨는 “정치인들이 왔다 가기도 했는데, 문화재나 소나무 걱정을 할 게 아니라 주민들 피해 보상을 어떻게 해줄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모(57)씨도 “4년 전 고성 산불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아직 컨테이너에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빨리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불 끄고 쉴 곳 내어주고... 도움 손길 내미는 이웃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이재민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강릉 상인들은 산불을 끄는 소방대원들과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 이재민들에게 무료로 커피를 제공했다.

한 카페에선 하루 동안 500잔이 넘는 커피를 나눠줬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재민들을 위해 공간과 음식을 제공하는 이웃도 있었다.

양양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이유진씨는 “대피소는 동물을 맡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려견을 데리고 계신 분들은 이곳에 오시라는 글을 올렸는데, 4분이 찾아오셨다”며 “이전에 뒷산에 불이 났을 때 반려견과 함께 대피할 곳이 없었던 경험이 있어 남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와 KT 자원봉사단도 밥차를 준비해 이재민들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

지난 11일 강릉시 난곡동에서 난 산불이 인근 야산으로 번지면서 시민들로 구성된 강릉소방대 의용소방대가 투입됐다. 사진은 소방관을 도와 산불 진화 작업을 하고 있는 의용소방대원. 강릉소방서

지난 11일 강릉시 난곡동에서 난 산불이 인근 야산으로 번지면서 시민들로 구성된 강릉소방대 의용소방대가 투입됐다. 사진은 소방관을 도와 산불 진화 작업을 하고 있는 의용소방대원. 강릉소방서

시민들로 구성된 강릉소방서 의용소방대원들은 밤을 꼬박 새우고 동이 튼 뒤까지 잔불을 정리한 소방관들과 함께 현장을 지켰다. 이정희(56)  강릉소방서 주문진의용소방대장은 “어제 오후 11시까지 현장에 투입됐다가 아침부터 다시 잔불 진화조로 현장에 투입됐다”며 “남은 불이 다 꺼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다 생업인 식당 영업에 복귀하겠다”고 말했다. 강릉의용소방대연합회는 총 270여명을 현장에 투입해 불을 끄고 대민 지원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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